CEO는 '어공', 정부는 툭하면 간섭…20년째 골골대는 전력·통신株

탈출! 코리아 디스카운트
(3) 주가 누르는 정책 리스크

2000년 이후 코스피 2.4배 뛸때
한국전력 주가는 44% 떨어져

유틸리티·통신·금융기업들
포퓰리즘 정책 수단에 동원
정부 바뀔 때마다 경영 휘둘려

총선 앞두고 통신비 인하 압박
KT·SKT 주가 5~8% 하락
사진=뉴스1
‘-43.8%’ 대 ‘144.6%’.

2000년 이후 한국전력 주가와 코스피지수의 상승 폭을 비교한 수치다. 2000년 1월 4일 3만6000원으로 시작한 한전 주가는 이날 종가 기준 2만200원으로 내려왔다. 코스피지수는 그사이 2.4배가량 올랐다. 1999년까지만 해도 시가총액 1위를 달리던 한전은 현재 29위까지 떨어진 상태다.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의 이면에는 이처럼 만년 저평가에 시달리는 유틸리티·통신·금융 업종 기업들이 지수의 발목을 잡은 영향이 크다. 각종 ‘포퓰리즘’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고 어공(어쩌다 공무원), 정치인 등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되는 등 정부가 바뀔 때마다 경영 원칙이 휘둘린 탓이다. 한전은 국제 유가 오름세에도 정부가 요금 인상을 억누르고 할인 정책을 도입하면서 실적 악화에 시달려야 했다. 전 정부 때 ‘탈원전’ 정책도 이 회사 부실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적자가 쌓이면서 부채 규모가 2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 입김 센 업종 PBR↓

5일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전력·통신·금융 대표 종목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비교한 결과 한전의 PBR은 0.38배로 미국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PG&E)의 1.37배, 엑셀론의 1.34배에 비해 크게 뒤졌다. 스페인 최대 전력회사인 이베르드롤라(1.60배)와 이탈리아 에넬(1.83배)에 비해서도 한참 낮다. 한국가스공사의 PBR은 0.23배로 한전보다 더욱 낮은 수준이다. 은행주들도 마찬가지다.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의 PBR은 각각 0.43배, 0.41배로 시총이 기업 청산가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미국 JP모간체이스(1.67배)와 비교하면 4분의 1, 일본 미쓰비시UFJ파이낸셜(0.93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통신산업도 유독 국내 기업들의 저평가가 심했다. SK텔레콤(0.94배)과 KT(0.56배)가 PBR 1배 미만을 기록한 반면 미국 AT&T와 버라이즌은 각각 1.23배, 1.92배였다. 일본 최대 통신사업자인 일본전신전화(NTT)는 1.71배다.

전문가들은 국내 전력·통신·금융 기업들이 해외 대비 유독 저평가된 이유로 정부의 입김에 휘둘리는 ‘규제 산업’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오랜 기간 전기료 인상이 묶이며 적자가 누적된 한전이 대표적이다. 한전의 부채비율은 작년 3분기 기준 564%로 2019년 말 186.8%에서 세 배 넘게 늘었다.

이들 종목은 주가도 정부 정책이나 외부 요인에 따라 급변동하고 있다. 한전은 2022년 10월 적자 폭 확대가 예상되면서 한 달 만에 주가가 15% 넘게 하락했으나 11월 15일 정부가 전기료 구성항목인 기준연료비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히자 다시 2주간 7.4%가량 올랐다.통신사도 정부가 통신시장에 개입하며 주가가 오르내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작년 2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통신시장의 과점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발언하자 KT와 SK텔레콤 주가는 2월 말까지 각각 8.7%, 5.3% 하락했다.

한 증권사 통신 전문 애널리스트는 “최근에도 4월 총선을 앞두고 통신비 인하 압박이 거세졌다”며 “통신사 주가는 외부 정책에 쉽게 흔들리다 보니 실적과 무관하게 가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정부 간섭 최소화해야”

전문가들은 이들 기업의 저평가를 해소하려면 △건전한 이사회 구성 △정부의 정책적 개입 최소화 △주주환원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민영화를 마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정치권의 영향력이 강한 KT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 KT는 대표이사 선출 과정에서 유력 후보였던 윤경림 전 KT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이 여야의 정치 공방 속에 사퇴하면서 초유의 ‘대표 공백’ 사태를 겪었다.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정치권의 영향력이 강한 기업들은 이사회가 경영진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 경영 효율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