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 사회('사법농단 핵심' 임종헌 1심 징역형 집유…"…)

'사법농단 핵심' 임종헌 1심 징역형 집유…"사법행정권 사유화"(종합2보)
전교조 소송 정부서류 대필 등 인정…사법농단 관련 재판 3번째 유죄 판단
재판부 "사법부 신뢰 저해했지만…'재판개입' 의혹은 실체 사라져"
사법농단 의혹의 '최상위 실행자'로 지목돼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기소 후 1천909일, 5년 2개월 만에 나온 1심 판단이다.

그간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인정된 전·현직 법관 3명 중에선 가장 높은 형량이다.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모든 혐의에 무죄 판단을 받은 가운데, 결국 사법행정의 '3인자'이던 임 전 차장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형사적 책임을 지는 구도가 된 셈이다. 다만 혐의별로 양 전 대법원장 등의 1심 재판부 판단과는 어긋나는 결론이 여럿 있어 최종 결론은 상급심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김현순 조승우 방윤섭 부장판사)는 5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임 전 차장은 2018년 11월 ▲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 대내외 비판세력 탄압 ▲ 부당한 조직 보호 ▲ 비자금 조성 등 네 가지 범주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재판부는 이 중 2015년 10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처분 소송에서 고용노동부의 소송서류를 사실상 대필해주고 청와대·노동부를 거쳐 사건을 맡은 대법원 재판부가 접수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는 임 전 차장에게 적용된 핵심 혐의 중 하나로 꼽힌다.

재판부는 "청와대 비서관의 부탁을 받고 소송 일반 당사자인 정부에 도움을 주고자 행정처 심의관에게 지시한 것으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015년 3∼8월 홍일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을 상대로 제기된 사해행위 취소 소송의 내용을 검토하도록 행정처 심의관에게 지시한 혐의, 2016년 11월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내용을 검토하도록 지시한 행위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국회의원 개인을 위해 법률 자문을 해준 행위로 직권남용에 해당하고, 법관 윤리강령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2015년 6월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의원에 대한 제소 방안 검토를 지시한 혐의도 "국가공무원법상 정치적 중립에 반해 직권남용에 해당하며, 심의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며 유죄로 봤다.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의 예산 3억5천만원을 현금화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위계공무집행방해·업무상 배임)도 일부 유죄로 판단됐다.

유죄로 인정된 배임 액수는 3억3천만여원이다.

이밖에 ▲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 내부 정보와 자료 수집 지시 ▲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법적 책임 면제방법 검토 지시 ▲ 통진당 의원 행정소송 관련 행정처 개입을 은폐하기 위한 허위 해명자료 작성 지시 ▲ 행정처 정책에 반대하는 판사 재산관계 검토 지시 혐의 등도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관련해 일본 기업 측 입장에서 재판 방향을 검토하고 외교부 의견서를 미리 감수해 준 혐의는 "사법부의 대행정부 업무로서 필요성과 상당성(타당성)이 인정되고 재판 독립을 침해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특정 법관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가담한 혐의에 대해서도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거나, 일부 해당한다 해도 행정처 심의관 등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특정 국회의원과 청와대를 지원하는 데 이용했다"며 "사법부 독립이라는 이념은 유명무실하게 됐고,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해된 데 이어 법원 구성원들에게도 커다란 자괴감을 줬다"고 질타했다.

다만 "수사 초기 언론을 통해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던 '사법농단'이나 '재판거래'에 관한 중대한 의혹들은 수많은 검사가 투입돼 수사가 이뤄지고 300쪽 넘는 공소사실로 정리되는 동안 이미 대부분의 실체가 사라졌다"며 "공소장에는 '재판거래 등을 실현하기 위해 심의관들에게 부적절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는 취지의 직권남용 혐의만 주로 남았고, 이 역시 대부분은 범죄가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수사 초기부터 사법 농단의 핵심으로 지목돼 오랜 기간 대내외적인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됐고 7년 가까운 기간에 많은 혐의를 벗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는 '사회적 형벌'을 받았다"며 "500일 넘는 기간 동안 구금되면서 죗값을 일부 치르기도 한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임 전 차장은 선고 직후 입장을 묻는 취재진에게 답하지 않고 법원을 떠났다.

검찰은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사법농단 관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14명의 전·현직 법관 가운데 일부라도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은 세 명이 됐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2심에서 벌금 1천500만원을,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26일 1심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