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우유 드셔보세요" 조롱까지…美 뒤흔든 '세기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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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뒤흔드는 '식물성 우유' 명칭 논쟁한 영상에서 미국의 유명 배우 오브리 플라자가 자신이 '우드 밀크'의 공동 창업자가 됐다고 밝힌다. "나무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이거 마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시발점이 됐다고 한다. 그가 나무에 압출기를 대고 돌리자 액체가 쏟아진다. 액체가 담긴 컵을 쥔 플라자가 말한다. "과일 말고 나무 우유를 드셔보세요"
3년새 36% 성장한 식물성 우유 시장
시장 잠식에 낙농계 "우유라 부르면 안돼"
농업계 "아몬드우유는 중세부터 존재"
국내선 '음료'로 권고…가이드라인은 없어
나무에서 우유를 짜내는 시대가 온 걸까.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다. 이 영상은 미국 우유가공업체의 후원을 받는 마케팅 조직 유가공교육프로그램(MilkPEP)이 아몬드, 귀리, 코코넛 등 식물성 우유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광고 영상이다. 식물로 만든 우유 대체품이 시장에 쏟아지자 이들에게 우유(牛乳·Milk)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며 낙농업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소팀과 콩팀 간의 우유 전쟁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라며 이러한 낙농업계와 농업계 간의 갈등을 보도했다.
미국 좋은식품협회(GFI)에 따르면 식물성 우유 시장은 2019년 20억달러(약 2조6700억원)규모에서 3년만에 36% 성장해 2022년 28억달러(3조 7400억원)로 커졌다. 전체 미국 우유 시장에서 식물성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달한다. 같은 기간 식물성 우유 판매량은 19% 증가한 반면 동물성 우유는 4% 감소했다. 식물성 우유가 시장을 잠식하자 미국 낙농업계는 정치권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수유 중인 동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우유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며 로비에 나선 것이다. 스콜 고틀립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은 "아몬드는 젖을 분비하지 않는다"며 낙농업계를 대변했다.
이러한 노력이 완전한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 했다. 지난해 2월 FDA가 식물성 음료에는 영양학적 차이를 설명하는 라벨을 붙이도록 하면서도 여전히 이를 우유라고 부를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농업계도 이러한 결정에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아몬드 농가 협동조합인 블루다이아몬드 재배자 협동조합은 FDA에 의견서를 보내 "소비자들은 아몬드와 유제품 우유의 차이를 혼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식물성 우유는 대중의 인식보다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는 게 농업계의 주장이다. 식물성 우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3세기 바그다드 요리책에 담긴 아몬드 우유에 대한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14세기 이집트에서는 아몬드 우유를 이용한 요리가 대중화됐고 1390년께는 영국으로 전파된 것으로 전해진다.
유럽연합(EU)은 2017년 식물성 음료에 우유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규정했다. 러시아도 지난해 3월 이같은 규정을 도입했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2년 3월 식물성 음료에 우유를 연상케하는 표현을 쓰지 않도록 권고했으나 정확한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는 산·학계와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