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 생겨서 외로웠던 사나이, 하늘에서 부디 '8막 8장'을...
입력
수정
[부고] 5일 타계한 배우 남궁원을 기리며원로 영화인들의 잇단 타계로 세간의 주목이 그리 집중되지는 못하는 듯 보이지만 배우 남궁원의 별세는 한 시대의 새로운 종언을 보내는 시그널과 같은 것이다. 향년 90세. 영화계는 지난 연말 연초부터 이어지는 부음들로 황망한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12월 김수용 감독이 별세한 이후 지난 1월에는 이두용 감독이 비교적 갑자기 세상을 떴다.
거기에 덧붙여 이번 남궁원 씨의 타계는 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 영화계가 이제 거의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이 시대의 영화인들은 이제 거의 남지 않은 셈이 됐다. 6~70년대는 한국 영화계의 제1 르네상스 기로 불리며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을 중심으로 한국영화산업은 전성기를 구가했고 남궁원 씨는 그 일원 중 한 명이었다.
옛 시대에 신장 180Cm의 한국 남자는 거의 드물었던 만큼 남궁원 씨는 일찍부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멋쟁이는 멋쟁이가 알아 본다고 그의 외모가 갖는 잠재력과 그 위험성을 알아 본 사람은 고 신상옥 감독이다. 신상옥 감독은 남궁원 배우에 맞는 모던한 한국영화가 그리 많지 않음을 안타까워 했다. 남궁원의 외모는 도시형이 라기 보다는 귀족 형이다. 프랑스 19세기 부르주아에 가깝다. 당시에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나 도시 인텔리 역은 거의 신성일이 차지했고 대중들은 남궁 원보다 신성일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남궁원의 작품 운이 살아 생전 그리 많이 따라 붙지 않은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 원은 한국 현대사에 길이 빛나는, 전설적인 감독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았다. 신상옥 감독은 ‘연산군(1961)’과 ‘빨간 마후라(1964)’에 그를 캐스팅했다. 기골이 장대한 그가 공군 잠바를 입은 모습은 그 옛날 시절 밀리터리 룩의 신기원을 만들었다. 한국 액션영화의 전설 정창화 감독과는 ‘황혼의 검객(1967)’을 찍었다. 무협액션을 하기에는 그리 날렵한 몸이 아니었던 지라 이후 협객영화 출연은 많이 이어지지 못했다. 이만희 감독과는 ‘암살자(1969)’와 ‘쇠사슬을 끊어라(1971)’를 찍었는데 특히 ‘쇠사슬’은 당시 보기 드문 웨스턴 장르의 영화로 만주가 배경이었다. 김지운 감독이 2008년에 만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오마주(homage)를 바친 격이 되는 작품이었고 여기서 정우성이 한 역할이 과거 남궁원 씨가 맡았던 롤이 라고 보면 된다. 과거와 현재는 그렇게 이어지고 클래식과 모던은 사실 한 몸이라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그럼에도 그의 80년대 영화 중 바로 앞서 타계한 이두용 감독과 함께 작업한 ‘피막’ ‘내시’는 실로 불멸의 작품이었다. 이제 남궁원 씨의 이름 앞에는 故가 붙게 됐다. 하늘에서 이두용 감독과 만나 ‘8막8장’이라는 새로운 영화를 찍게 되실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우리는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편히 영면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