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설전속…장호진 안보실장, '비공개 방한' 러 외무차관 접견(종합)

지난 3일 루덴코 아태차관 비공식 만나…최근 북러 동향 등 논의한 듯
'한러관계 관리 필요성' 의지 해석…정부 "한러, 서로 대립하면서도 관리"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주말 비공개 방한한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아시아·태평양 담당 외무부 차관을 비공식 접견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한·러 외교당국이 이례적 설전을 벌이는 와중에 우리 외교·안보 사령탑과 러시아 외무차관 만남이 이뤄진 것을 두고, 오랫동안 경색된 한러 관계 관리 필요성에 양측 모두 의지를 보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장 실장은 지난 3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루덴코 아·태 담당 차관을 만났다.

앞서 외교부는 루덴코 차관이 지난 2일 김홍균 1차관과 정병원 차관보,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잇달아 만났다고 공개한 바 있다. 그 이튿날인 3일 루덴코 차관이 장 실장을 별도로 예방한 사실이 추가로 알려진 것이다.

3일은 윤석열 대통령 발언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의 논평에 우리 외교당국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설전이 벌어진 시점이다.

이날 오전 이른 시간 외교부는 북한의 '핵 선제 사용 법제화'에 대한 윤 대통령 언급을 "편향적이며 혐오스러워 보인다"고 비난한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을 겨냥, "수준 이하로 무례하고 무지하다. 혐오스러운 궤변"이라고 비판하는 입장을 배포했다.

이어 오후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항의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루덴코 차관의 장 실장 예방이 성사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그만큼 소통 및 관계 관리에 대한 양국의 공동 의지가 관철된 것으로 해석한다. 안보실장이 비공식이기는 하나, 자신보다 급이 낮은 차관보급 인사 접견에 응한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다.

루덴코 차관은 장 실장이 윤석열 정부 초대 주러시아대사를 지낼 당시 러시아 측 카운터파트였다.

장 실장은 지난해 6월 외교부 1차관으로 이동한 직후 러시아를 방문했을 당시에도 루덴코 차관을 만난 바 있다.

이 소식통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외교부 고위 당국자들이 루덴코 차관과 공식적으로 만났지만, 장 실장이 루덴코 차관과 잘 알고 지낸 만큼 보다 허심탄회한 의견 교환을 위해 만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는 최근 북러 동향과 관련해서도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북러 군사협력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현안에 대한 상호 '레드라인'을 재확인하며 한러 관계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제의 자하로바 대변인 논평과 관련한 의견 교환도 이뤄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장 실장의 루덴코 차관 면담 사실을 확인하면서 "당시에도 이(자하로바 대변인 발언)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안다"며 "러시아 측의 구체적 반응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루덴코 차관은 해당 논평이 자신의 방한 시점과 맞아떨어진 데 대해 '우연'이라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설전 과정에서 양국이 말로는 상대국 정상을 정면 겨냥하는 등 마찰을 빚었지만, 그 기저에서 행동으로는 고위급 교류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는 게 정부 인식이다.

한러 양국은 애초 루덴코 차관의 방한이 지난해 9월말 성사되도록 조율했다.

이후 러시아측 사정으로 수개월이나 연기되는 등 쉽지 않은 과정 끝에 이번에 어렵게 성사된 것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양국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관리하려고 노력한다"며 "이번 사태로 한러 관계를 계속 규정할 순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