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층수는 '고고익선'?…조합원들은 '동상이몽'

재건축 층수는 '고고익선'?…조합원들은 '동상이몽'

성수 1지구, 50층 미만 재개발 '가닥'
반포주공 1단지도 35층 선택해 속도전
랜드마크 상징성 있지만 공사비 변수
건설사 입장에서도 "공사비 갈등 걱정"
“60층 이상 초고층 재건축을 원하는 조합에 예상 조감도를 드리면 다들 좋아하죠. 그런데 그 밑에 함께 나오는 예상 공사비를 보면 표정이 굳습니다. 단순히 한 층 더 올린다고 그만큼만 공사비가 추가되는 게 아니거든요. 저희도 공사비 얘기만 나오면 난감해집니다.”(대형 건설사 정비사업 담당)

최근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초고층’에 대한 고민이 깊다. 초고층으로 지으면 주변 단지보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층수가 높을수록 공사비가 급증해 조합원 사이에선 반대 여론도 강하다. 70층 재건축을 추진했던 조합이 다시 50층 미만 재건축을 선택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도 층수를 무조건 높이기보단 사업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50층 vs 75층 엇갈린 성수동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의 모습. 한경DB
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1지구는 최근 재개발 층수를 두고 조합원 투표를 진행했다. 50층 이상 초고층 재개발에 나설 것인지, 50층 미만 준초고층 재개발을 진행할 지를 묻는 투표였다. 투표 결과 50층 미만 재개발을 선택한 조합원은 50.97%, 초고층 재개발을 선택한 조합원은 47.47%였다. 근소한 차이로 50층 미만이 선택된 것이다.

조합원은 초고층 재개발로 사업 속도가 늦어지면 오히려 손해가 아니냐는 반응이다. 70층 재개발을 추진하면 각종 인허가 절차를 더 거쳐야 한다. 안전 문제 등도 신경을 써야 하고, 공사비 상승도 불가피하다. 당장 새 집을 받고싶은 조합원에게는 빨리 지을 수 있는 층수로 재개발을 진행하는 게 오히려 이득이라는 것이다.반면, 초고층 재개발을 선택한 조합원은 다른 지구와의 경쟁력을 걱정한다. 당장 같이 재개발을 추진 중인 2·3·4지구는 70층 초고층 재개발을 추진 중이다. 특히 4지구는 30층대 재개발을 추진하던 전임 조합 집행부가 조합원의 반발에 물러나고 다시 초고층 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향후 재개발이 완료될 경우 1지구만 저층 단지라는 평가를 받고 가격 경쟁력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합은 아직 층수가 결정된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가설계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로, 당장 조합원의 의사를 물은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 조합 관계자는 “조합원의 의견을 모아 건축심의 준비에 반영하려 한 것이었다”며 “향후 건축심의 과정에서 언제든 조합원 의사에 따라 바뀔 여지가 있다”고 했다.


○공사비 남다른 ‘초고층’…사업성 비교해야

서울 내 대표적인 초고층 단지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한경DB
정비업계에선 초고층 재건축·재개발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앞서 49층 재건축을 포기하고 35층 재건축으로 사업 방향을 설정한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는 최근 사업 속도를 내고 있다. 착공을 앞두고 있는 단지는 층수를 더 높이기보단 아이스링크와 콘서트장 등 주변 단지엔 없는 호화 커뮤니티 시설로 경쟁력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사업 도중에 층수를 높이면 인허가를 비롯해 일정이 상당 부분 지연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반포주공1단지는 조합원 평균 연령이 60대를 넘어섰기 때문에 빠른 준공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초고층 건축은 일반적으로 50층을 기준으로 한다. 50층 이상 건물은 30층마다 피난 구역을 만들어야 하고, 안전설계 기준도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선 여의도 한양아파트(최고 56층)와 시범아파트(70층) 등이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는 최고 70층, 압구정 노후 단지도 50층 이상 재건축을 준비 중이다. 용산구 한강맨션도 최고 68층 재건축에 나섰다.건설업계에서도 최근 초고층 정비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급등으로 공사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에 갈등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금도 건설 중인 단지마다 공사비 갈등이 심한데, 향후 초고층 재건축을 진행하는 단지는 갈등이 더 깊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 대형 건설사 설계 담당은 “50층을 넘어서면 공사비 계산 방식이 달라진다”며 “추가되는 설계와 난이도를 고려하면 50층과 70층의 공사비가 2배 가까이 날 수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성을 우선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경제성만 놓고 보면 100층 건물보다 30층 건물 2개 동이 훨씬 높다”며 “랜드마크 단지라는 상징성을 제외하면 공사비 상승과 사업 지연에 더 무게를 두는 게 이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