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팔 없이도 ... '한국화 거장' 박대성이 초대형 수묵화로 펼친 '월드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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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센터 박대성 순회전‘한국 산수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이 긴 해외 순회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이다. 1945년생으로 여든을 앞둔 나이, 그는 독일과 카자흐스탄,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을 찾았고, 여덟 번의 전시를 열었다.
'소산비경' 3월 24일까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는 한국 작가 최초로 초대전을 열었다. 폭발적 반응에 전시는 두 달이나 연장됐다. 세계를 돌고 돌아 다시 서울, 산수화로 펼치는 박대성의 ‘앵콜 전시회’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렸다.전시장에 들어서는 관객들마다 놀라움 섞인 감탄사를 내뱉게 하는 것이 박 화백의 그림이 가진 힘이다. 그 힘은 ‘압도적인 작품 크기’에서 나온다. 그는 폭 10m, 높이 5m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들을 주로 그리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도 넓은 전시장의 벽 끝에서 끝을 모두 차지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객들을 캔버스 속 눈 내리는 경주로 끌어들이는 듯한 마력을 지녔다.미국에서 그의 작품이 폭발적 인기를 얻은 비결에도 작품 크기가 있었다. 특히 LACMA의 전시 장소를 얻을 때엔 주요한 역할을 했다. 2022년 전시장 심사 당시 맨하탄 전시장은 한국관과 중국관이 모두 공사를 이유로 문을 닫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전시장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가나아트는 이 때 박대성의 작품 단 여덟 점을 들고 나섰다. 위원회는 적은 작품 수에도 불구하고 박 화백의 작품 크기에 압도됐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시장 메인 자리를 내줬다.
미국 관객들도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들었다. 입소문을 타고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관객들까지 미술관으로 불러들였다. 단순히 ‘한국화가 생소해서’가 아니었다. 벽면 하나를 전부 덮어내는 회화 설치 방식이나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한국화와 현대화를 섞은 화풍에 감탄했다. 불국사 설경을 그린 작품 ‘불국설경’ 앞에서는 “이게 왜 한국화인가? 기존 회화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질문도 쏟아졌다. 이 작품은 이번 서울 전시에서도 여전히 한쪽 벽을 차지했다.그는 여덟 번의 순회전 내내 모든 전시장을 찾아 관객과 만나 그림을 시연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그저 그림만 걸어 두고 관객에게 보라고 했던 과거 전시와 가장 달랐던 점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여든 살 거장의 그림 그리는 장면을 본 외국 관람객들은 보는 족족 경이로움을 내비쳤다. 건강해도 그리기 힘든 초대형 수묵화를 그리고 있는 거장에겐 오직 ‘한쪽 팔’ 뿐이었기 때문이다.
박대성은 고난이 키워낸 집념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표현한다. 그는 정규 미술교육은 커녕 그림을 독학하기에도 벅찬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다섯 살 부모를 모두 잃고 6.25 전쟁을 겪으며 왼팔을 잃게 됐다. “고놈 그림 하나는 참 잘 그린다”는 동네 노인들의 칭찬 때문에 두문불출하며 그림에만 몰두했다.그가 대형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도 의미가 깊다. ‘집에 걸기도 힘든 대형작을 그리면 개인의 소유가 되기보다는 미술관이나 공공에 걸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박대성은 동양만이 가진 ‘먹의 아름다움’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큰 그림에 집중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삼릉비경’은 그 높이만 8m로 전시장 벽을 넘어섰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바닥에 일부분이 코트자락처럼 끌린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재미있는 작품 배치다.박대성은 눈 내리는 불국사를 자주 그리는 작가다. ‘불국사 화가’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다. 그와 불국사 설경은 운명처럼 만났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제자에게 “5년이 넘도록 경주에는 눈이 쏟아진 적이 없다는데, 경주의 설경을 한 번 그려보고 싶다”고 푸념하며 잠이 든 그 날, 경주엔 이례적인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눈이 온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박 화백은 단숨에 불국사 설경을 그려냈다고 한다.
박 화백의 수묵화는 기존의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한국 수묵화 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대신 현대 회화의 요소를 섞어 ‘박대성 스타일’을 창조했다. 풍경을 그릴 때도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강조했다. 마치 서양의 추상화를 그리듯 마음대로 붓을 놀렸다.그가 1년 중 350일을 산다는 경주의 풍경을 그린 ‘신라몽유도’가 그의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준다. 작품 속에 담긴 경주 대표 유적들에는 ‘비례’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유적이 한 데 모여있는데다 큰 크기로 강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뒷편에 보이는 경주 남산(南山)은 실제 모습과는 달리 산맥이 매우 단순하고 왜곡된 형태로 그려졌다.작업실이 있는 경주의 풍경, 경복궁과 같은 일상적 공간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더해 ‘삼릉비경’, ‘경복궁 돌담길’과 같은 작품을 그렸다. 전부 그의 머릿속에서 창조된 새로운 시공간이다. ‘현율’ 연작에서는 과장법을 영리하게 사용해 역동적인 화면을 완성하며 ‘산수화의 정형’에서 벗어났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순회전을 펼치며 그렸던 ‘1차 스케치’도 함께 나왔다. 그는 낙서와도 같은 스케치를 기반으로 작품을 그린다. 일 년에 수천 장이 넘을 정도다. 박 화백에게는 이 스케치가 자리에서 ‘끄적끄적’ 일기처럼 하는 루틴이라고 한다. 그는 스케치를 작품과 함께 보여주면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국가마다 그의 낙서를 함께 걸었다.그는 ‘한국화 계승’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순회전 기간동안 미국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센터, 다트머스대학교 후드미술관 등을 돌며 한국화에 대해 강연하고 토론회를 펼쳤다. 다트머스대학교의 김성림 교수 주관 하에 네 개의 대학이 그의 전시와 연계하여 도록을 발간하기도 했다. 평론집 형식의 이 도록은 한국화 작가를 미술사적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영문 연구서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전시가 열리는 첫날 서울을 찾는 ‘경주의 화가’ 박대성은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산업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고 화려하게 변해갑니다. 하지만 나는 역으로 그 모든 것을 한 걸음 물러서서 조용히 관람하죠. 그런 관망의 과정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빈 곳을 채워갑니다”라고. 월드투어를 마친 여든 살 거장의 전시는 3월 24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