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금감원의 무리한 회계감리가 반복되는 이유

'엄한 처벌' 집착하는 금융 당국
적정한 제재로 신뢰 회복해야

류병화 증권부 기자
▶마켓인사이트 2월 8일 오후 2시 48분

“나쁘게 보면 뭐든 나쁘게 보이죠. 결국 이렇게 끝날 줄 알았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 회계 감리가 중과실로 결론이 났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위원들은 금융감독원이 주장한 ‘고의 분식회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혐의의 쟁점은 두산에너빌리티 인도 현지법인인 두산파워시스템즈인디아(DPSI)의 회계 처리 위반 여부였다. DPSI가 2016년 말 수주한 총 2조8000억원 규모의 자와하푸르 및 오브라-C 화력발전소 공사 진행 과정에서 원가 상승으로 발생한 손실을 적기에 회계 처리했는지가 논의의 핵심으로 다뤄졌다. 증선위원들은 두산에너빌리티의 회계 처리에 문제가 있었지만 위반 동기가 고의까지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발주처와의 분쟁 결과에 따라 손실 금액이 달라질 수 있어 확정하기 어려웠다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그간 금감원은 증선위 단계에서 번번이 중과실로 감경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금감원은 2022년 셀트리온, 2020년 KT&G 등을 고의 분식으로 감리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증선위에서 중과실로 낮춰졌다.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 이후 증선위에서 대형 상장사의 고의 분식회계를 인정받은 사례는 없었다. 증선위에서 검찰로 넘어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도 지난 5일 법원에서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받았다.

두산에너빌리티 분식 논란은 애초부터 중과실로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고의적으로 손실을 감췄을 유인이 적었기 때문이다.

고질적으로 금감원이 무리수를 두는 이유에 대한 세간의 추측도 무성했다. 증선위에서 감경받을 것을 감안해 최고 수위의 징계를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중과실로 볼 여지가 있단 점을 금감원도 인지하고 있지만 중과실로 올렸다간 과실로 또 한 단계 낮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를 담당해온 금감원의 한 수석조사역이 3년간 끈질기게 파헤친 걸 윗선이 막기 어려워 중징계 통보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마저 돌았다.

금감원이 번번이 무리수를 두는 탓에 금융당국의 초동 판단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고 있다. 약점을 보완하지 못했다면 낮은 수위로 조정해 올렸어야 맞는다는 지적이다. 회계 감리를 시작하는 기관이고 문제점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을 기관이 적정한 판단을 내려줘야 시장의 불필요한 오해도 줄일 수 있다. 3년 이상 감리에 시달린 회사는 고의 통보 이후 분식회계 기업이란 낙인 속에서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되 과도한 제재를 남발해 기업의 경영 활동까지 방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