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사라진 설 극장가, 그 자릴 메운 '3대 한국영화' 전격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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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설 시즌 3대 한국영화
'시민덕희' '데드맨' '도그데이즈'
블록버스터급 제작투자 사라진 영화판
80억대 저예산 영화들, 재기발랄함 '꿈틀'
신인 감독들의 첫 장편 데뷔작과 첫 상업영화
1940년대 '뉴 할리우드'처럼 새로운 흐름될까
※스포일러 주의
미국 영화 산업에서 일년 중 가장 큰 영화시장은 여름과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죠스>와 <스타워즈>를 포함한 초기 블록버스터가 여름에 개봉하는 전통을 만들어 낸 이유도 방학과 휴가가 몰려 있는 여름시장을 타깃으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추석과 구정 연휴 시즌이 가장 큰 영화 시장 윈도우에 포함된다. 최근 한국영화산업의 전반적인 부진은 이러한 개봉 전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설 시즌은 중요한 마켓임이 분명하다.
2024년 올해 설날을 타겟으로 하거나 직전에 공개된 한국영화들 – <시민 덕희>, <데드맨>, <도그데이즈> 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80억원 가량의 (비교적) 저예산 영화들이라는 점과 세 편 모두 이번에 장편 데뷔하거나, 첫 상업영화로 등단(?)하는 신인 감독들이라는 점이다.
시민덕희-상업영화, 사회고발, 여성서사극…박영주 감독의 팔방미인급 첫 장편
구정을 앞 두고 개봉한 <시민덕희>는 신인, 박영주 감독의 첫 상업 장편이다. 영화는 보이스피싱으로 가산을 탕진한 덕희의 이야기를 다룬다. 운영하던 세탁소의 화재로 인해 대출상품을 알아보던 ‘덕희’ (라미란) 에게 거래은행의 ‘손대리’ (공명) 로부터 대출상품을 제안하는 전화가 온다. 승인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수수료를 요구한 손대리에게 매번 사채로 구한 돈을 보낸 덕희는 이 모든 단계가 보이스피싱이었음을 뒤늦게 알아내고 충격에 빠진다. 피해자들을 모아 지지부진한 경찰 수사를 독촉해 보고자 하지만 진전이 없는 와중, 덕희에게 어느 날 손대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손대리는 제보를 하겠다며 자신이 (감금되어) 일하고 있는 곳이 중국 칭다오에 위치한 봉제공장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덕희는 잃어버린 돈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직장 동료이자 친구, ‘봉림’ (염혜란)과 ‘숙자’ (장윤주)를 대동하고 칭다오로 직접 날아간다.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지난 한국영화들이 사회이슈를, 특히 비슷한 주제인 보이스피싱을 다루었던 선례에서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과도한 복수극이나 극단적인 난투극을 피하는 대신 캐릭터의 유연함과 유머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마치 스티븐 소더버그의 <에린 브로코비치>가 메인 캐릭터의 ‘공명심’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녀가 가진 총명함과 소시민적인 따뜻함에 무게를 두었던 것처럼 말이다.
데드맨-스토리는 빈약하나 박호산 전무송 김원해 '명품 조연'의 탄탄한 동력
또 다른 설날 개봉 한국영화, <데드맨>은 <시민덕희>와 구성면에서 비슷하다. 덕희가 보이스피싱의 피해자로 복수에 나선다면, <데드맨>의 ‘이만재’ (조진웅)는 ‘이름’의 피해자로 복수극을 주도하게 되는 인물이다. 생활고로 아내와 이혼까지 하게 된 이만재는 급기야 이름을 팔아 돈을 버는 전문 ‘바지사장’이 된다. 그럭저럭 잘 되어가는 듯했지만 얼마지 않아 그에게 돌아온 것은 1000억 횡령 누명과 본인의 사망 기사다. 이만재는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 즉 ‘데드맨’이 되어 영문도 모른 채 중국의 사설 감옥에 끌려가게 되고 노역에 시달리다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도그데이즈-한 없이 착한 판타지면 어때? 강아지는 늘 옳으니까!
마지막으로 소개할 <도그데이즈>는 제목 그대로, ‘도그 (강아지)’ 영화다. 영화는 저명한 건축가, ‘조민서’ (윤여정) 가 반려견, ‘완다’를 잃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민서는 단골 배달기사인 ‘진우’ (탕준상) 와 함께, 완다의 동물병원 원장인 ‘진영’ (김서형) 은 건물주인 ‘민상’ (유해진)과 완다를 찾아 나선다. 다행히 완다는 입양가정인 ‘정아’ (김윤진) 와 ‘선용’ (정성화) 그리고 딸, ‘지유’ (윤채나) 에 의해 구조되었다가 민서의 품으로 돌아간다.1940년대에 텔레비전의 부상과 파라마운트 판결로 할리우드 산업이 불황에 돌입했지만, ‘뉴 할리우드 시네마’라는 작지만 재기발랄한, 새로운 세대의 영화가 탄생했다. 현재의 한국 영화 역시 현재의 위기를 계기로 또 다른 세대의 혹은 또 다른 뉴 커머들에게 통로를 열어주는 기회가 될 수 있을 지 기대가 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