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 팔던 회사…'연매출 200억' 대박 난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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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희 대풍EV자동차 대표 인터뷰“고추건조기 등 각종 농기계를 팔다, 소형 전기차 사업으로 기업의 살길을 찾았습니다.”
농기계 판매→소형 전기차 큰바람
창고에서 8년…각종 농기계 판매
"절대 포기 말고 죽기 살기로"
소형 전기차 사업전환해 살길 찾아
모든 차량 직접 조립 및 생산
제2공장 완공, 수출 준비 박차
백옥희 대풍이브이자동차 대표는 이같이 말하며 “없던 것을 만드는 ‘창조적 도전’ 철학으로 회사를 운영한다”고 덧붙였다. 대풍이브이는 업력 13년차의 친환경 소형 전기차 기업이다. 전기운반차·농업용 동력운반차·전기삼륜차 등을 제조하고 있다.회사는 운영 초기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다. 백 대표는 서울에서 지역 농산물을 팔다가 2011년 이후 전남 화순군 등에서 각종 농기계를 판매했다. 백 대표는 “태풍 볼라벤이 온 뒤로 전기 고추건조기 제품이 잘 팔리다가 2015, 2016년이 되자 매출이 줄었다”며 “다른 회사 5곳이 부도나는 광경을 보며 어떻게 사업을 이끌어나가야 생존할 수 있을지 큰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했다.
활로는 소형 전기차에서 찾았다. 백 대표는 시대가 바뀌며 경운기를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각종 농업용 제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전기를 활용하는 제품이 미래 경쟁력이 있다고 봤다. 2016년에 호남권 내 첫 이륜자동차 제작자로 등록했다. 회사 이름은 ‘대풍이브이자동차’로 바꾸고, 농업용·친환경 소형 전기차 분야로 사업을 전환했다.
◆동남아시아 의료용 전동차 현지화도
대풍이브이는 2018년부터 전기이륜차, 삼륜차, 화물 운반차를 생산하고 있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이륜자동차는 총 배기량 또는 정격 출력의 크기와 관계 없이 1인 또는 2인의 사람을 운송하기에 적합하게 제작된 이륜의 자동차 및 그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는 자동차를 뜻한다.현재 전남 영광군 대마면 대마전기 자동차 산업단지에 3만3058㎡ 규모의 공장과 본사를 두고 있다. 백 대표는 “모든 차량은 직접 조립해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개발을 지속해온 끝에 총 13종의 모델을 내세우고 있다. 대표 제품으로 농업용 전기운반차(DE202-AW, 나이스3L 등) 5종 등이 있다.
최근에는 내수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해외 수출 준비에 힘쓰고 있다. 대풍이브이는 최근 수출을 위한 제2공장을 완공했다. 동남아시아 지역 특성에 맞는 의료용 전동차는 물론 5·9인승 삼륜 전기차까지 개발 및 현지화를 준비하고 있다. 2022년 12월에는 네팔의 전기자동차 업체(NEPAL-KOREAN EV VEHICLE COMPANY)와 5년간 1000만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기술 개발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제품 국산화에도 공들이고 있다. 2017년 문을 연 기업 부설 연구소는 8건 이상의 관련 특허와 인증을 갖고 있다.
산업·농업 분야에서의 친환경 차량 수요가 늘고 정부의 전기차 보급 사업 정책이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봤다. 대풍이브이의 매출은 2020년 95억원에서 2022년 156억원까지 늘었다. 백 대표는 “지난해 매출은 200억원이 좀 안 된다”고 말했다.
◆"두드리면 열리니 절대 포기 말 것"
백 대표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제조업계에 바로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초반에는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빚쟁이들에 쫓기고 힘들게 잠을 청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백 대표는 “창고에서만 8년을 보냈다”며 “도시 옥상, 지하는 물론 단칸방에서 지내며 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그만큼 현장에서 발로 뛰며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빠르게 알 수 있었다. 백 대표는 “경운기, 건조기, 농기계, 동력운반차를 팔러 다니니까 사람들이 점점 ‘뭐 타고 다닐 거 없어요’라며 저를 찾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백 대표는 “경운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좀 느리더라도 안전하게 타고 다닐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찾는 물건을 듣는 일은 사업의 동기 부여가 되었다.그의 인생 모토를 묻자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린다. 안 열리면 발로 차서 들어가면 된다”라며 “절대 포기하지 말고 죽기 살기로 하다 보면 문이 열리게 되더라”는 호탕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오유림 기자 ou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