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 전 종로의 속살…세계 최초 공개된 조선총독부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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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미국 워싱턴D.C. 의회도서관 자료 조사
학술총서
외교관, 여행가, 조선총독부, 외신의 기록 집대성
조선 말기~현대에 걸친 80여 년의 생활상 담아
12일 서울책방과 서울역사박물관서 공식 발간
말발굽 모양으로 넓게 펼쳐진 초가집, 어깨 위에 쟁반줄을 단단히 매고 사탕을 파는 조선의 어린 소년들, 일제강점기 때 광희문 밖 꼭꼭 숨어있던 빈민굴, 노량진의 무녀촌, 그리고 1884년 경희궁에 서서 파노라마로 찍은 서울….한국인들도 잘 몰랐던 옛날 서울의 모습들이 책으로 엮여 나왔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미국 워싱턴 D.C. 의회도서관의 판화·사진분과 자료 등을 조사해 학술총서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서울 사진: 네 개의 시선>을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140년 전 미국에서 온 외교관, 여행가, 조선총독부, 외신 자료를 총망라한 이 책엔 1880년대부터 80여 년 간 격동의 서울을 포착한 163점의 사진이 담겼다.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생활상태조사'의 기초자료 일부는 미 의회에서도 공개한 적 없는 희귀본들이다. <네 개의 시선>에는 조선 말기부터 1960년대까지 4개의 컬렉션이 담겼다. 미국 외교관, 여행 저널리스트, 조선총독부, 미국 언론사 등이 각각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이 주제다.
'조지 C.포크 컬렉션'은 통역사로 조선에 온 보빙사 일행을 수행한 뒤 이를 계기로 조선의 미국 공사관에서 외교 무관으로 파견된 미국 해군 장교 조지 포크(1856-1893)가 촬영한 사진들이다. 포크는 고종의 근대화 사업 자문 역할을 맡으며 남산에서 본 서울 전경과 숭례문과 성벽 밖 민가의 사진 등 현존하는 숭례문 사진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사진들을 남겼다. 1884년 부임 후부터 1년간 찍은 사진들로 그가 머물던 정동과 경희궁 일대 1880년대 서울 풍경을 상세히 담았다. 책은 '프랭크 G.카펜터 컬렉션'으로 이어진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며 수많은 책과 저서를 남긴 미국의 사진가이자 여행작가(1855-1924). 1888년 고종을 인터뷰했던 그는 조선의 근대화된 모습을 일본과 미국 문명의 수혜물로 보기도 했다. 1909년 순종의 부름을 받아 궁궐로 가는 가마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남기기도 한 카펜터는 다수의 저서를 통해 20세기 전반 미국인들이 조선을 바라보는 창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의 어린 소년들은 어깨 위에 줄을 매단 쟁반을 들고 다니며 사탕을 판다”, “조선의 집들은 말발굽 모양을 띠고 있으며 주로 나무로 지은 집이나 짚을 얹어 돌과 진흙으로 만든 초가집 에 산다”고 기록했다. 아이들을 위해 제작된 <카펜터의 지리학 교재> 시리즈는 1930년대까지 미국 내에서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외국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베스트셀러였다. 그의 사진들 중 창덕궁 인정전과 일대 사진들은 궁궐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는 또 남대문로 일대 조선은행 광장 전경사진 등 근대화의 결과물들도 남겼다. 하이라이트는 세 번째 장인 '무라카미 텐코 컬렉션'이다. 워싱턴 의회도서관에서 아직 등록하지 않은 미공개 사진들로, 해방 직후 미국이 일본에서 입수한 조선총독부 문건들 중의 일부가 담겼다. 해방 직후 미국이 일본 도쿄에서 입수한 자료들 중 일부가 의회도서관으로 이관된 것으로, 이번 조사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
경성 외에도 평양 인천 수원 대전 강릉 경주 부산 광주 제주 황해도 함흥 간도 등 전국의
‘생활상태’, ‘경제사정’, ‘상업’, ‘부락’ 등 사진 뒷면의 기록을 통해 조선총독부 생활상태 학술조사의 기초자료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성의 사진들은 당시 서울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던 무라카미 텐코 등이 촬영했다. 돈화문로 일대 시가, 종로 5가 일대 전경, 남산 일대 시가지 전경 사진 등을 같은 지점 (경성소방서 부설 종로지서의 고층 망루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에서 북쪽-동쪽-남쪽을 향해 촬영한 사진들이라 시가지의 면면이 생생하다. 이밖에 조선총독부가 산업조사의 일환으로 촬영한 특수부락, 신흥부락, 빈민촌 등의 사진은 식민당국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10년부터 국내외 흩어져있는 서울학 자료를 발굴, 조사해 학술총서로 발간하고 있다. 해외에서 잊혀지거나 접근이 어려워 잘 알려지지 않은 서울학 자료를 모아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조선 말기~현대에 걸친 80여 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포착된 서울의 모습을 담았다"며 "이방인들이 각자가 보고 싶었던, 또 보여주고 싶었던 서울의 모습을 다양하게 비교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서울 사진 : 네 개의 시선>은 '서울책방'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판매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