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IT 생태계 약육강식 시대

최진석 실리콘밸리 특파원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가총액을 합친 수준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9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 추진 소식을 전하며 이같이 보도했다.올트먼 CEO가 AI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기 위해 5조~7조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을 목표로 아랍에미리트(UAE) 등 투자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7조달러면 한화로 약 9331조원이다. 애플과 MS의 시가총액을 합산하면 6조달러(약 7980조원) 수준이다. 올트먼은 범용인공지능(AGI) 시대에 들어서면 AI 반도체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픈AI가 반도체부터 대규모언어모델(LLM), 챗봇까지 수직계열화를 통한 강력한 AI 생태계 구축에 나선 것이다.

'AI 생태계' 확장 나선 빅테크

애플도 이달 초 테크업계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이 회사는 지난 2일 확장현실(XR) 헤드셋 ‘비전프로’ 판매를 시작했다. 노트북보다 비싼 3500달러(약 470만원)의 높은 가격에도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2014년 애플워치 이후 처음 내놓은 새 하드웨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애플 생태계를 확장했다.

구글도 최근 차세대 LLM 제미나이를 중심으로 한 자사 AI 생태계를 재편했다. 불과 1년 전 야심차게 내놓은 챗봇 바드를 지우고 그 자리에 더 강력한 LLM을 앉힌 것이다. 구글은 문서 작업과 이미지 추론 및 생성부터 코딩까지 다양한 업무에 제미나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MS도 지난달 챗봇 빙을 코파일럿으로 변경하고, 협업 관계인 오픈AI의 LLM GTP-4를 자사 서비스에 적용했다. 메타는 올해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를 앞세워 AGI 제조에 나설 방침이다.

생존 위협받는 한국 기업들

AI 시대를 맞아 빅테크들은 생성형 AI, 챗봇, 클라우드 등 관련 생태계 구축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이들 기업은 먹이사슬의 상단을 차지했고 주가도 가파르게 치솟았다. 애플과 MS는 시총 3조달러 시대를 열었고, 엔비디아의 주가는 1년 전 200달러대에서 현재 700달러대로 세 배 이상으로 급등하며 시총 2조달러에 근접했다. 구글, 아마존, 메타도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며 뉴욕증시 상승을 주도했다.

이들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의 주가는 온도차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6만~7만원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애플이 비전프로를 출시한 뒤 3일이 지난 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20년 9월 기소된 후 3년5개월간 발생한 경영 차질에 대한 보상은 받을 길이 없다. 네이버의 주가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고, 카카오 주가는 크게 떨어졌다.

AI 시대는 이전보다 빠르고 강력한 약육강식의 원리가 작동한다.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생태계를 강화하고 확장해야 살아남는다. 약한 생태계는 강한 생태계에 의해 와해되거나 잠식당한다. 한국 기업의 생태계가 AI 먹이사슬의 하단에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