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에 사직서 낸 '대우맨'…1억으로 1200억 라온테크 키웠다 [윤현주의 主食이 주식]

반도체 진공 로봇 국내 1위
김원경 라온테크 대표 인터뷰

“고객사 다변화·해외 영업 강화
올 영업익 두 배 이상 증가 도전
R&D는 생명 … 연매출의 10% 투자”

반도체 사이클 따라 실적 변동 가능성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다. 가짜뉴스 홍수 속 정보의 불균형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주식 투자 경력 17년 6개월의 ‘전투개미’가 직접 상장사를 찾아간다. 회사의 사업 현황을 살피고 경영진을 만나 투자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한다. 전투개미는 평소 그가 ‘주식은 전쟁터’라는 사고에 입각해 매번 승리하기 위해 주식 투자에 임하는 상황을 빗대 사용하는 단어다. 주식 투자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손실의 아픔이 크다는 걸 잘 알기에 오늘도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기사를 쓴다. <편집자주>
서준호 라온테크 구매자재팀 사원이 회사 연혁을 소개하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고객사 다변화와 美·中 진출 확대로 올해 매출 30% 이상 성장과 영업이익 두 배 증가에 도전하겠습니다.”김원경 라온테크 대표(59세)는 지난 1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라온테크는 반도체 진공 로봇 국내 1위 업체다. 국내 메이저 반도체 장비업체인 테스·원익IPS·주성엔지니어링과 주로 거래하고 최종 고객사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인텔이다. 본사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산업로 156번길 88-4에 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산업로 156번길 88-4에 위치한 라온테크 본사. 수원=윤현주 기자
반도체 제조용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Factory Automation·공장 자동화)을 생산·판매하는데 국내 최고 수준의 반도체 진공 로봇 기술과 국내 유일 웨이퍼 이송용 진공 로봇으로 유명하다. 진공 로봇의 경우 반도체 8대 공정 중 산화, 식각, 박막, 금속배선 공정 등에 쓰인다.
라온테크 사무동에 있는 소규모 회의실. 수원=윤현주 기자
주력 제품인 ‘반도체 로봇 및 자동화 플랫폼’은 반도체 제조라인에서 웨이퍼를 이송하는 EFEM(Equipment Front End Module)과 진공 환경에서 웨이퍼를 이송하는 백본(Backbone)전체를 포함한다.
품질경영팀 직원들이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반도체 재료인 웨이퍼의 가공 공정은 포토 공정에서 회로를 그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후 식각과 증착, 이온주입, 박막형성 등을 통해 가공을 하고 반도체를 제조하게 된다. 웨이퍼가 반도체 팹(Fab·제조라인)에 투입되면 진공 상태에서 수십㎞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는데 50~60일, 최대 700개의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라온테크는 국내 유일 진공 환경에서 웨이퍼를 이송하는 진공 로봇을 만들고 있다.
김원경 라온테크 대표가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김 대표는 옛 대우중공업에서 10년간(1990년~1999년) 로봇 개발을 하다 회사 구조조정으로 로봇 사업이 중단되자 창업으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2000년 3월 14일 회사의 전신인 테크노넷을 설립했는데 당시 김 대표의 나이는 35세였다. 1억원으로 창업을 했고, 시가총액 1168억원(18일 기준)의 회사로 키웠다. 김 대표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수학 상수인 파이(π)를 기념하기 위해 회사 설립일을 3월 14일로 했다.
김강훈 경영관리팀 이사가 회사가 받은 상패들을 설명하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반도체 로봇 관련 기술력을 축적하며 2003년 반도체&디스플레이 로봇을 개발(삼성전자 수탁개발)했다. 2011년 국내 반도체 양산 라인에 진공 로봇을 공급했다. 진공 로봇은 고온(PM 온도 200~700도)에서 입자 발생 없이 웨이퍼를 이송해야 하고 장시간 사용과 온도 상승에도 동일한 위치를 재현하는 게 중요하다.
경영관리팀 직원들이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2015년엔 일본과 미국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로 개별 제어 진공 로봇(Individual Controlled 4 Arm)을 만들었다. 사측은 “이 로봇은 네 개의 개별 제어식 팔이 달렸는데 공정 미세화로 정밀도가 2배 향상됐고, 웨이퍼 처리량은 25%가 늘었다”고 평가했다. 생산성 향상을 요구하는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이 사용 중이고 해외 경쟁사 로봇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봇 특허는 현재 30여개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라온테크 직원이 클린룸에서 개별 제어 진공로봇(VACTRA-Q)을 만들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김 대표는 “2022년 시동 건 해외 영업이 미약하지만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며 “올해 해외 수출 비중이 큰 폭으로 뛸 것이다”고 자신했다. 이어 “현재 美·中 메이저 반도체 장비 회사 3곳과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고, 이중 규모가 가장 큰 中 업체에서 양산 오더를 받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객사 다변화로 영업이익은 두 배 이상 뛸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직원들이 웨이퍼 진공 이송 모듈을 제작하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최근 4년간 실적은 양호하다. 2020년 매출 184억원, 영업이익 11억원에서 2022년 사상 최대 실적(매출 594억원, 영업이익 8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345억원, 영업이익 19억원으로 다소 주춤했다. 올해 해외 진출 강화로 매출을 더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반도체 장비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점은 올해 4분기로 예상한다”며 “내년 실적 퀀텀 점프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메이저 반도체 장비사들의 투자가 늘면 자연스럽게 라온테크 실적이 뛰기 때문이다.
기업부설연구소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김 대표가 가장 중요시하는 건 무엇일까. 그는 “R&D(연구개발)는 생명이다”며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는 로봇만이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며 “매년 매출의 10%를 R&D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직원도 전체 인력(125명)의 32%가 R&D 인력(40명)이다.
김정태 인사총무팀장이 점심시간 사내 복지 시설인 실내 골프 연습장을 사용하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김 대표는 “반도체 회사들에게 선택 받으려면 기존 제품과 차별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only one(단 하나의)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또 “반도체 로봇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글로벌 무대 위에서 놀아야 한다”며 “삼성전자 전무, 램리서치코리아 부사장 출신의 상재호 사장을 지난해 3월 영입해 해외 영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글로벌 마케팅·영업·서비스 인력을 충원했다.
공격 경영 예고에도 주가는 힘이 없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주가는 9320원으로 연초(1월2일 9570원)보다 2.61% 하락했다. 주가 부양책을 고심하고 있을까. 김 대표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2022년 4월 무상증자를 실시했고, 같은 해 결산 현금배당(50원)을 진행했다”고 답했다. 또 “지난해 9월 주가 안정을 위해 자사주 취득 30억 신탁계약을 최근 완료했다”며 “향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직원 휴게 공간인 카페테리아. 수원=윤현주 기자
총 주식 수는 1253만4234주로 최대주주는 김 대표(지분 21.05%) 외 특수관계인 8인이 지분 37.40%를 갖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기관이 지분 8.3%, 기타법인이 6%를 보유하고 있다. 자사주는 2.69%로 유통 물량은 약 45% 정도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성 자산 104억원, 부동산 자산 120억원이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49.02%다.
라온테크 1층 라운지. 수원=윤현주 기자
김 대표는 “반도체 시장의 경우 업다운이 있지만 계속 커질 것이다”며 “현재 글로벌 반도체 로봇 점유율 3%도 안 되는데 제품 경쟁력과 해외 영업 강화로 점유율을 높이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반도체 산업의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등 대형 회사들의 투자 지연 땐 라온테크 실적이 둔화될 수 있다.
하윤수 경영관리팀 대리가 회사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이재모 그로쓰리서치 대표는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라온테크는 반도체 공정용 웨이퍼 이송 로봇 및 자동화 모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꾸준한 기술개발을 밑바탕으로 성장했다”며 “국내 중소기업 R&D 투자비율이 평균 2.9% 수준임을 감안할 때 R&D 투자비율이 높은 편이다”고 평가했다. 또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게 가장 큰 강점으로 다수의 고객사를 확보한 것도 눈에 뛴다”고 했다. 다만 “전방 고객사가 반도체에 집중되어 있어 산업 사이클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크다”며 “향후 대응 가능한 시장을 넓혀 가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직원들이 1층 클린룸에서 진공 이송 모듈 제작 및 개발 테스트를 하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35세에 1억원으로 창업해 1100억원대 회사로 키운 김 대표가 청춘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을까. 김 대표는 “육하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를 잘 따져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처음부터 잘 되는 일은 없다. 목표를 정했으면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실패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오니, 실패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면서 “잘못된 부분을 개선하고 또 도전해야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최성민 로봇앤시스템팀 사원이 로봇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수원=윤현주 기자
김 대표는 “반도체 로봇 개발도 평균 5년 정도 걸린다”며 “제품이 나왔다고 현장에 바로 투입되는 게 아니라 라인 투입 시 불만사항 접수 등 여러 번의 성능 개선을 통해야만 상용화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즉 어떤 분야든 본인이 집중하고 끈기를 가지고 부딪힌다면 성공이라는 열매를 맛볼 수 있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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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윤현주 기자 hyunj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