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네팔서 '감사'가 태어났다…나눌수록 커지는 원조의 힘

1963년 서울여자대학교는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부터 '기프트 박스'를 받았다.

미국 구호단체인 헤퍼인터내셔널을 통해 전달된 저지종(種) 암소 다섯마리였다. 추운 겨울을 넘기며 세 마리의 암송아지가 태어났다.

설립자였던 고황경 총장은 헤퍼에 쓴 서신에서 "품질이 좋은 우유가 나오고 있어 매우 좋다.

판매도 가능할 것 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헤퍼인터내셔널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 농촌을 위해 1952년부터 1976년까지 총 3천200여마리의 가축을 한국에 제공했다.

'노아의 방주'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로 젖소 897마리도 한국에 왔다.

대한민국을 낙농강국으로 일으켜 세운 마중물이었다. 1962년 한국에 온 헤퍼의 젖소 10마리는 연세유업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한국은 젖소 원조를 받는 조건으로 한가지 약속을 했다.

첫 번째 암컷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를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웃에게 전하라는 '패싱 온 더 기프트'(Passing on the Gift) 철학을 실천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6일 저녁(현지시간) 네팔 신둘리지구 카말라마이시 낙농시범마을에서는 40㎏짜리 건강한 암송아지가 태어났다.

2022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와 헤퍼코리아가 네팔에 지원한 젖소 101마리 가운데 처음으로 현지 출산이 이뤄진 것이었다.

70년이라는 시공을 넘어 한국이 헤퍼에 했던 약속이 다른 국가에서도 의미 있는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경기 남양주시 순흥목장에서 기증한 홀스타인종 '토실이'가 지난해 5월 4일 인공수정으로 임신, 280여일 만에 낳은 송아지였다.

새끼를 얻은 네팔 농가는 한국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송아지의 이름을 '감사'라고 지었다.

현재 74마리가 임신 중으로, 송아지 출산이 이어질 예정이다.

젖을 뗀 송아지들은 인근의 어려운 농가로 전달되며 네팔 전역의 낙농업을 일구는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주목할 것은 '감사'의 탄생이 단순히 원조의 산물이 아니라 이른바 'K축산'이 외국에서 일궈낸 작품이라는 점이다.

젖소 생우를 해외로 반출한 것 자체가 처음인 만큼 현지에 적응시키고 사육과 출산까지 관리하는 데에는 고도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필요했다.

젖소 송아지는 자연출산이 아니라 종모우(種牡牛) 수소의 정자를 추출해 암소에 이식하는 인공수정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농림축산부 젖소개량사업소 전문가들과 서울우유·파주유우진료소에서 파견된 수의사와 번식전문가 등이 그동안 네팔 현지를 수시로 찾아 축사와 젖소 상태를 점검하며 세심하게 인공수정을 지원해왔다고 한다.

또 현지 농가에 바이오가스와 워터탱크 등 시설을 지원하고 데이터 수집 디지털화 교육까지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한국 측의 정성과 노력으로 태어난 첫 젖소 송아지 '감사'는 올해 50주년을 맞는 한·네팔 관계의 상징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한 서남아 국가에 무상원조를 하며 모자(母子)보건 병원을 건립해줬다가 사후관리가 안돼 빈축을 산 일화가 있다.

지금은 양국 간 우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우리나라 원조가 그간 시스템과 노하우가 부족해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원조는 한손으로 주지 말고 두손으로 줘야 한다고 한다.

주고받는 관계를 넘어 상대국의 마음을 사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지속 가능한 원조가 되려면 주는 이의 가치와 철학이 받는 이에게로 흘러 들어가고, 이것이 또 다른 도움으로 이어지는 나눔의 선순환이 있어야 한다.

'감사'의 탄생은 대한민국이 원조공여국으로서 진정한 나눔을 실천한 성공 사례로 평가할만하다. 선진국 문턱에 온 대한민국 원조의 지평이 한층 더 넓어질 것이란 기대감을 가져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