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PI 쇼크' 주범은 렌트비 급등…"월세 25% 올려도 들어오려는 사람 줄 서"

특파원 현장 리포트

고금리에 주택 매입 미룬 채
월세로 몰리며 주거비 급상승
임대 팻말 따로 세우지 않아도
세입자 바로 구할 수 있어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근교 버지니아주 폴스처치시에 매물로 나와 있는 주택. /정인설 특파원
“월세가 올라도 무조건 들어가겠다는 사람만 15명입니다.”

미국 워싱턴DC 근교 북버지니아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A씨는 요즘 월셋집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월세를 구해달라는 사람은 줄을 섰는데 월세 공급은 씨가 말라서다. 우수 학군지로 유명한 버지니아 매클레인과 폴스처치, 옥턴, 비엔나 지역 등이 대표적이다. A씨는 “20년째 부동산 일을 하고 있지만 월세 수급이 지금처럼 꼬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월세 수요자가 늘면서 부동산 업체들은 따로 광고를 내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주택 정원 앞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월세 표지판도 사라졌다. 폴스처치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히더 엠브레이 베터홈스 대표는 “이미 월세를 들어가겠다는 고객들만으로도 충분히 월세 공급을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월세 팻말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월세 수요가 넘치면서 워싱턴DC 근교의 렌트비는 부르는 게 값이 되고 있다. 3년 전 3850달러(약 515만원)였던 비엔나 지역의 한 단독주택 월세는 올해 4800달러로 25%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매클레인에 있는 타운하우스 월세는 4250달러에서 4900달러로 상승했다.

월세 급등은 통계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미국 노동부가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올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주거비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6.0%였다. CPI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로 가장 높은 주거비가 오르자 전체 CPI 상승률도 시장 예상치(2.9%)를 뛰어넘은 3.1%였다.주거비가 인플레이션 주범으로 몰릴 정도로 급등한 것은 ‘고금리의 악순환’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고금리 여파로 상승한 주택 가격이 렌트비를 끌어 올리고, 이로 인해 전체 인플레가 떨어지지 않아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빨리 내릴 수 없다는 설명이다.

미국 주택담보대출은 대부분 30년 고정금리여서 기준금리가 상승해도 기존 차입자의 이자 부담은 그대로다. 반면 새집을 사려면 고금리 신규 대출로 갈아탈 수밖에 없어 이자 부담이 확 늘어난다. 이 때문에 기존 주택을 팔고 다른 주택으로 옮기려는 사람이 줄어 주택 매물이 급감했다.

공급이 줄자 미국의 기존 주택 가격은 지난해 12월까지 6개월 연속 상승했다. 이로 인해 주택가격에 연동되는 보유세(평균 1.25%) 부담이 증가했다. 주택 소유주 보험(해저드 보험) 비용도 급등했다. 100만달러 상당 주택의 연간 보험료는 3년 만에 1200달러에서 2000달러가 됐다.집주인들은 이런 비용 증가분을 렌트비에 전가했다. 결국 주택 가격 상승이 렌트비 오름세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높아진 집값이 부담스러운 수요자들이 월세 시장으로 밀려들면서 렌트비 상승폭은 더 커지고 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