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공급망실사법 최종 승인 표결 또 잠정 연기

의장국 벨기에 "구체적 추후일정 아직 없어"…좌초 가능성 커져
유럽연합(EU)이 기업의 인권·환경 보호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이른바 '공급망실사법'이 끝내 좌초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EU 상반기 의장국인 벨기에는 14일(현지시간) 27개국 상주대표회의에서 실시될 예정이던 '기업의 지속 가능한 공급망 실사 지침'(이하 CSDDD) 최종 승인 표결을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9일 한 차례 연기한 데 이어 이번 주에도 표결이 또 한 번 무산된 것이다.

향후 일정도 불투명하다. 벨기에 정부 당국자는 연합뉴스의 관련 질의에 "현재로서는 상주대표급 회의에서 CSDDD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고 답했다.

CSDDD는 산업 공급망 전반의 인권·환경 보호에 대한 기업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다.

관련 규정을 위반할 경우 연 매출액의 최대 5%까지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이날까지 최소 두 차례 연기된 투표는 CSDDD 입법을 위한 최종 관문 격인 이사회·유럽의회·집행위 간 3자 협상이 작년 연말 타결된 이후 필요한 후속 승인 절차다.

통상적으로는 이 투표 절차가 형식적 절차에 해당하지만, 막판에 독일과 이탈리아가 기권 입장을 표명하면서 암초를 만났다.

독일의 경우 연립정부의 일원인 자유민주당(FDP)이 CSDDD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연정 내부적으로 의견일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EU 투표에서 기권표를 던진다.

최종 승인 표결은 가중다수결제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회원국 수의 55% 이상, EU 전체 인구의 65%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EU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독일, 이탈리아가 빠지면 가결 요건을 갖추는 게 불가능한 셈이다.

아직 FDP가 반대 입장을 철회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데다 이탈리아도 계속 기권할 경우 최종 승인이 끝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가 예정돼 있어 적어도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4월 전까지는 승인 표결이 마무리돼야 한다.

만약 상반기 중 후속 절차가 끝내 완료되지 않으면 선거 이후 새로 들어설 집행부 및 유럽의회에서 CSDDD가 아예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다만 독일 FDP는 최근 EU의 대형화물차 이산화탄소(CO₂) 감축 규제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다가 일부 양보를 얻어낸 뒤 반대 입장을 철회한 전례가 있다. 이에 CSDDD에 대해서도 극적으로 최종 승인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여전히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