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시계 거꾸로 돌리는 국회 연금개혁 특위

이제 와서 1만 명 여론조사 시작
'결단의 시기'에 또 다시 뒷걸음

보험료율·소득대체율·수급연령
가짓수 많지만 반년 전 선택지 나와
'더 내고 덜 받기' 국민 수용이 관건
구체적 개혁안 들고 설득 나서야

허원순 수석논설위원
국회가 이제 와서 국민 1만 명을 대상으로 연금개혁에 대한 입장을 묻겠다고 나섰다. 그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발표 자료를 보면 500명의 시민대표단까지 새로 모집하겠다고 한다. 지난달 말 특위 아래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키더니 이런다. 자문단도 만들었고, 추가로 의제숙의단이라는 것도 구성 중이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의무가입연령 등을 뒤늦게 ‘숙의’한다는 것이다. 특위 아래 조직을 보면 사공도 너무 많다.

특위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시작된 게 언제인데, 지금에야 2주간에 걸친 대형 국민 설문조사를 하겠다는 건가. 전임 정권의 직무 유기로 지난 대통령선거 때도 연금개혁은 큰 쟁점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에 맞춰 3대 개혁 과제의 하나라며 근 2년간 시급성과 중요성을 역설해왔다. 개혁안 마련 주체가 정부에서 국회로, 다시 정부로 핑퐁 치기 해 온 것도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가 일 처리를 잘했다고 할 수는 없다. 지난해 8월, 뻔한 사안을 9개월 동안이나 주물럭거리다 내놓은 시안이 10개를 넘기도 했다. 이후 모수개혁에서 다시 뒷걸음치는 등 우왕좌왕해온 복지부 행보에는 비판받을 게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찬성률이 86%에 달할 정도로 국민연금 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판에 ‘1만 명 기초조사’를 하겠다니 황당하다. 개혁을 유보하자는 반응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어쩔 셈인가. 조사비용과 헛수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불필요한 조사다. “연금개혁 합의안을 도출하려면 공론화가 필요하므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확산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표문 자체가 최소한 2년 전쯤 나왔어야 할 다짐이다.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한 지금은 선택과 결정의 시기다. 이미 늦었다. 이제야 숙의하겠다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가입연령과 수급 시기는 그대로 개선의 핵심이다. 복지부가 전문가들을 동원한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의 첫 제시안에 선택지가 나와 있다. 9%인 보험료율을 12·15·18% 중 어느 선으로 올릴지, 40%의 소득대체율은 더 올릴지 이 수준으로 갈지, 수급연령은 어떻게 조정할지 우선 세 가지 정도만 정하면 된다. 어떻게 가든 더 내고 늦춰 받기는 불가피한데, 가입자 설득이 관건이다. 개혁 필요성엔 동의하지만 보험료율 인상(더 내기)에는 반대(70%)가 많은 현실이 불편한 진실이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끌어온 것이다.

국회든 정부든 지금쯤은 이 결정을 했어야 했다. 나아가 일부 복지확장론자가 주장하는 부족분 재정 지원안에 대한 원칙까지 정리가 됐어야 할 시점이다. 더 내기와 덜 받기 중 하나라도 회피하려면 예산 지원이 불가피하다. 물론 현행법에서는 안 된다. 과거 불발됐던 정부지원법을 다시 만들어 연금 수명을 연장하는 편법을 개혁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미래세대 부담 측면에선 이것도 조삼모사나 다름없다. 정년연장이나 계속고용의 제도화와 직접 연계론도 나와 있다. 개혁의 전선을 한껏 넓혀 국민연금을 공무원·군인의 진짜 연금과 묶자는 주장도 없지 않다.행여 이렇게 고난도 복차방정식으로 만들어 버릴 경우 저무는 21대 국회가 무슨 수로 뒷감당을 하나. 그런 시도는 결의만으로도 파장이 너무 크다. 현실성 없는 이상론에 시행 각론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면 지금 정치권 역량과 정부 리더십으로는 해결이 어렵게 된다. 지금으로선 기금 고갈 시기를 20년 정도만 늦춰도 차선책이 되는 이유다. 국회는 이런 실상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최소한의 모수개혁안을 마련해 국민에게 호소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5월 말 전에 개혁의 여야 합의안을 내놓는 게 특위 방침이다. 달리 말하면 4월 총선 때까지는 여도 야도 구체적 방안엔 입을 닫겠다는 얘기가 된다. 그 반대여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적어도 국민연금은 인상요율과 수급연령에 대한 구체적 숫자를 공약으로 내놓고 유권자 선택을 받아야 당당한 정치다. 공당의 책무일 뿐더러 그래야 향후 실행안을 밀어붙이는 데 동력도 확보된다. 특위가 전제 조건이나 주렁주렁 달고 구름 위 이상론이나 내놓으며 논점 확대, 쟁점 흐리기로 오도할까 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