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죽은 유니콘들 '몸집 불리기' 멈췄다

작년 스타트업 M&A '0건'

스타트업 인수금액은 400억
1년만에 200억 넘게 줄어들어

M&A 건수, 절반으로 급감
네이버·카카오도 투자 줄여
"엑시트 창구 사라져 창업 위축"
주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스타트업 인수합병(M&A) 작업을 멈춰 세웠다.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을 사들이면서 빠르게 몸집을 키운 벤처 호황기 때와는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전체 스타트업 M&A 건수와 인수 금액도 모두 쪼그라들었다.

○뚝 떨어진 인수가격

15일 벤처투자포털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다른 기업에 인수된 스타트업의 평균 인수금액은 400억600만원이었다. 2022년 평균 인수금액인 606억원보다 200억원 넘게 줄었다. 2021년(1703억원)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투자 혹한기 영향으로 대형 M&A가 없었던 데다 인수 대상이 된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하락한 영향이다.

한때 기업가치가 8000억원에 달한 배달대행 스타트업 부릉은 지난해 800억원을 받고 hy에 지분 66.7%를 넘겼다. 몸값이 크게 떨어진 채 거래된 것이다. 더브이씨 관계자는 “헐값에 팔렸다는 의견도 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재도약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스타트업 대상 M&A는 48건으로 2022년 94건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투자 호황기 때 인수 주체로 스타트업 M&A 시장을 주도한 유니콘들의 국내 스타트업 인수 사례가 작년엔 한 건도 없었다. 2020~2022년엔 토스(타다 인수), 컬리(헤이조이스 인수), 오늘의집(집다 인수), 당근마켓(페스타 인수) 등 유니콘들이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을 사들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유니콘들도 투자 한파에 지갑을 닫았다는 분석이다. 한 유니콘 관계자는 “재무 쪽의 판단이 굉장히 보수적으로 바뀌었다”며 “새로운 회사를 인수해 사업 확장을 추진하기보다는 기존에 인수한 스타트업과의 시너지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는 게 내부 판단”이라고 말했다.

지분 투자를 시작으로 스타트업을 사들이며 몸집을 불린 카카오, 네이버 등 빅테크도 경기침체 영향으로 스타트업 투자와 M&A 활동을 줄였다. 두 회사의 투자계열사인 카카오벤처스와 네이버 D2SF가 스타트업에 투자한 사례는 지난해 18건으로, 전년(66건)의 3분의 1 수준을 밑돌았다.

○“활로 뚫을 방법 찾아야”

혹한기 특유의 M&A 방식도 나타났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한 에듀테크 스타트업 뤼이드는 영상교육 업체 퀄슨을 인수하고 최고경영자(CEO)를 박수영 퀄슨 대표로 교체했다. 뤼이드 창업자인 장영준 대표는 사임하고 고문 자리로 물러났다. 기업 체질 개선을 위해 M&A를 진행한 것이다. 외식 브랜드 달래F&B를 인수하려던 주류 스타트업 제주맥주는 잔금 81억원을 치르지 못해 인수를 철회하기도 했다.M&A 시장 경색이 전체 스타트업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M&A는 엑시트(투자금 회수) 창구를 마련해주면서 또 다른 창업에 나서게 하는 원동력을 일으키는 핵심 경로”라며 “새 활로를 뚫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