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투성이 AI? 인간 의식 투사된 것…예술로 미래 바꾸는 일,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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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전시 리뷰“내가 다른 이들보다 더 멀리 봤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LG 구겐하임 'Late Shift x 스테파니 딘킨스'
LG와 손잡은 구겐하임
1회 어워드 수상자에
스테파니 딘킨스 '파격'
AI데이터 편식 경계해온
작가이자 '인플루언서'
"AI는 멀리 있지 않아
두살짜리 아이 대하듯
올바른 방향 교육해야"
17세기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남긴 말이다. ‘거인의 어깨 위’라는 표현은 선인들의 지혜를 발판 삼아 뛰어난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는 뜻. 인공지능(AI)이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거인의 어깨’가 될 수 있을까. 만약 그 거인이 알고 보니 편견투성이의 두 살배기 아이와 같다면? 지난달 25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LG 구겐하임 어워드’ 첫 번째 수상자 스테파니 딘킨스의 신작 전시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에서 그 답을 찾아봤다.지난해 5월 19일. LG와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이 제1회 ‘LG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로 스테파니 딘킨스를 지목했을 때 미술계는 물론 정보기술(IT)업계도 크게 놀랐다. 딘킨스는 타임스가 선정한 2023년 100대 ‘AI 인플루언서’. AI의 데이터 편식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유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이자 학자이자 교육자다. 전통적인 미술관의 대명사인 구겐하임이 AI 아트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노암 시걸 LG구겐하임 아트앤테크놀로지 이니셔티브 전임 큐레이터는 “미술관은 그 출발부터 동시대 기술과 관련이 있다. 회화, 판화, 사진, 조각에 이르기까지 모든 매체가 기술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영향을 주면서 진화했다”며 “사진을 예로 들면 카메라 옵스큐라가 디지털 카메라와 스캐너로 발전하면서 이미지 제작 기술은 계속 변화해왔다”고 했다. 완성된 작품을 컬렉션하는 수동적인 미술관이 아니라, 예술가가 새로운 매체를 탐구하고 익숙해져 가는 과정을 지원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능동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AI는 편견으로 가득한 두 살배기 아이
이런 의미에서 LG구겐하임이 딘킨스를 첫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하고 지원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딘킨스의 작업은 AI 그 자체를 들여다본다. 그가 말하는 AI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수천 년 쌓인 인간의 지식이 입력된, 일종의 ‘집단 지능’이다. 농업, 의학, 생물학 등 과학 분야는 물론 경제 경영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AI가 마치 마법의 단어처럼 쓰이고 있는 것, 동시에 일반인에게 AI가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작가는 경계한다.“대중이 막연하게 갖는 AI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이 새로운 기술에 더 많이 참여해 우리 공동체의 요구에 맞게 (AI를) 바꿀 수 있길 바랍니다.”
한겨울 늦은 저녁 열린 행사에서 딘킨스는 작년 5월 수상 이후 작업해온 작품 세 점을 깜짝 공개했다. ‘The Stories We Tell Our Machines’ ‘Wisdom Bot’ ‘Not the Only One Avatar Image 2023 brain(N’TOO)’ 등이다. 미술관 문을 닫은 뒤 열린 행사였지만 400여 명이 넘는 관객이 몰렸다. 오혜원 LG전자 HE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담당 상무는 “우리는 예술과 기술이 상호 영감을 주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깊게 이해하는 작가와 작품을 응원하고 지원한다”며 “스테파니 딘킨스의 새 작업을 OLED TV라는 캔버스에 담아 선보일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아이를 대하듯, AI를 가르쳐라
이날 공개된 세 작업은 모두 관객과 소통하는 인터랙티브 기반이다. ‘N’TOO’는 2018년 베타버전을 선보인 이후 계속 업그레이드 중인 프로젝트.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미국 흑인 가족 3대의 이야기를 ‘구술’로 입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객 질문에 대해 AI가 답변하는 방식이다. 이전에는 음성만 존재했으나, 최근 작업부터는 아바타가 대답한다. 투명 OLED 디스플레이로 구현됐는데, TV 하단에 부착된 카메라가 앞에 선 관객의 눈을 인식하면 대화가 시작된다. 물론 아직은 에러도 나고, 두세 살 아이 수준의 답변을 내놓는다. 매끄러운 대화는 어렵다. 하지만 작가는 “끊임없는 (논리적) 대화가 목표가 아니다. 구술이라는 방식으로 입력한 데이터를 AI가 학습하고, 소화함으로써 AI와 관련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마저도 AI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첨단기술이 경쟁하는 AI 분야에서 고대부터 인류의 지식을 전승해 온 스토리텔링 방식과 대중의 참여를 결합해 새로운 종류의 AI내러티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The Stories We Tell Our Machines’는 기계가 인간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AI에 입력된 편견이 가감 없이 공개되는데, 감추고 싶은 치부가 낱낱이 드러난다. 커다란 모니터 앞에 선 관객이 설치된 마이크에 “나는 OOO야”라고 설명하면 AI가 그에 걸맞은 이미지를 생성해내는 방식. “나는 아시아 여자이고, 이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야”라고 말하자 1~2분 뒤 일본 정원 풍경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아시아’와 ‘아웃사이드’라는 단어만 알아듣고 한적한 일본 외곽을 보여준 상황은 한마디로 ‘웃픈’ 경험이었지만, 아시아에 대한 서양 주류사회의 전형적인 시각을 유추할 수 있었다.
○지금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시점
작가는 ‘우리 모두 AI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이 바로 ‘기회의 시점(point of opportunity)’이라고도 주장한다.“인간은 자신들이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인간)공동체를 부정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이를 (현상)유지하기 위해 편견, 두려움, 연약함, 지역주의가 더 깊숙하게 내재된 시스템을 개발한다. 그러나 가족, 마을, 국가 등 우리 관심 범위를 벗어난 것에는 그다지 능숙하지 못하다. 어쩌면 AI는 우리가 더 큰 그림을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기계를 가르치기 위해 던지는 지식과 질문은 인간 자신을 향한다. “이미 확고해진 편견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구상의 모든 사람, 모든 환경, 모든 생명체의 진정한 형평성, 자율성, 번영이 목표라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거나 바꿔야 할까?”딘킨스는 이 같은 전환이 ‘인간’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인간이 된다는 건 다차원적 방식으로 삶을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작물인 예술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안전장치이자 이런 전환의 중추적 역할이라는 게 작가의 말이다. AI가 예술과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뉴욕=이한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