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화, 세계선수권 하이 다이빙 남자 23위…4명 제쳐

한국의 유일한 '하이 다이버' 최병화(32·인천광역시체육회)가 두 번째로 출전한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23위에 올랐다.

최병화는 15일 카타르 도하 올드 도하 포트 특설 무대에서 끝난 2024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대회 하이 다이빙 남자부 경기에서 1∼4차 시기 합계 217.30점을 얻어 중도 기권한 2명을 포함한 총 27명 중 23위에 자리했다. 27m의 아찔한 높이에서 몸을 던지는 하이 다이빙 남자부는 13일 1, 2차 시기를 치렀고, 이날 3, 4차 시기 점수를 합해 최종 순위를 정했다.

1, 2차 시기를 20위로 마친 최병화는 3, 4차 시기를 벌이는 동안 순위가 밀렸다.

하지만, 1차 목표였던 200점 돌파에 성공했고 최하위도 면했다. 최병화는 지난해 후쿠오카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하이 다이빙 경기에 출전했다.

당시 최병화는 187.50점으로 23명 중 최하위에 그쳤다.

1·2라운드에서 최하위로 시작해, 3·4라운드에서도 만회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나선 세계선수권에서도 순위는 23위였지만, 이번에는 출전 선수가 27명이었다.

도하에서 최병화는 200점 고지를 넘고, 4명을 제쳤다.
최병화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최병화의 할아버지는 '불운한 마라토너'로 불렸지만, 한국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룬 고(故) 최윤칠 대한육상연맹 고문이다.

최윤칠 고문은 1948년 런던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해 38㎞까지 선두로 달렸다.

하지만, 근육 경련 탓에 결승선을 3㎞ 정도 앞두고 기권했다.

최윤칠 고문이 35㎞를 2시간06분02초, 1위로 통과한 것을 증명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게 최윤칠 고문은 한국 선수들이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 첫 올림픽에서 메달리스트가 될 기회를 놓쳤다.

최윤칠 고문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완주에 성공했지만, 4위로 레이스를 마쳐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올림픽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최윤칠 고문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안고 출전한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에서 1,500m에 출전해 3분56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가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함기용, 송길윤에 이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최병화는 할아버지 최윤칠 고문의 권유로 유아스포츠단 수영부에 들어가 수영을 배웠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조정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해병대를 전역한 뒤에는 트라이애슬론에 도전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 아마추어로 다이빙을 즐기던 최병화에 대한 소문이 '엘리트 업계'에도 퍼졌고, 최병화는 2022년 대한수영연맹 등록선수가 되면서 국제대회에 출전할 자격도 갖췄다.

2023년 한국 하이 다이빙 최초로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그는 올해 세계선수권에서는 한결 완성도 높은 연기를 펼쳤다.
이번 대회 하이 다이빙 남자부 챔피언은 '신예' 에이든 헤슬로프(21·영국)였다.

헤슬로프는 422.95점으로, 413.25점을 받은 '하이 다이빙 전설' 게리 헌트(39·프랑스)를 제치고 우승했다.

지난해 후쿠오카에서 5위를 했던 헤슬로프는 개인 첫 세계선수권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했다. 헌트는 세계선수권 5번째 메달(금 2개, 은 2개, 동 1개)을 수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