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가스에 썼던 세금, 이젠 탱크에 쓸 때"…EU 수장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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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FT 인터뷰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사진)이 15일(현지시간) “유럽은 방위 산업에 더 많은 돈을, 유럽 내에서, 더 현명한 방식으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EU 내 중앙집권적 방산업 육성 전략 개발"
NATO 18개국 GDP 2% 국방비 지출 달성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뮌헨안보회의(MSC)를 하루 앞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EU 집행위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러시아로부터의 공급이 중단된) 가스의 공동구매에 나섰던 때와 같이, 유럽인들의 세금을 활용해 방산업 육성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EU 집행위는 실제로 군사비 지출을 대폭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이달 중 발표가 예정돼 있는 유럽 내 군산복합체 개발 계획에는 개별 회원국의 무기 구매계약 자금을 대고, 계약에 대한 보증을 제공하는 데 EU 예산을 투입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계획에 일부 회원국이 반발할 가능성을 의식한 발언이라고 FT는 해석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런 방식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가스 수급을 안정화하는 과정에서 이미 활용됐다”면서 “신식 탱크를 원한다면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유럽 납세자들이 공정한 방식으로 낸 세금은 EU 내에서 쓰여야 한다”며 “EU는 방산 전략 통합 가속화를 위해 회원국들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동시에 (방산 부문에서의) 투자수익률(ROI)을 높일 것”이라고도 했다.미국과 같은 제3국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이기보다는 EU 역내 방위 산업을 키워 자체 조달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국가별 이해관계에 따라 파편화돼 있는 방산업 육성 전략을 중앙집권화하겠다는 의지도 담겼다.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산산이 조각나 있는 EU의 방산 시장은 바뀌어야 한다”며 “EU 집행위의 역량은 산업 육성에 달려 있고, 우리는 구매자(buyer)가 아닌 조력자(enabler)로서 핵심 산업인 방산업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다수 EU 회원국들이 가입돼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올해 총 3800억달러(약 506조5000억원)를 방위비로 지출할 계획이다. 사상 최대 규모다. 10년 전(2300억달러)과 비교하면 65%가량 늘었다. NATO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쓰겠다는 원칙을 세웠던 당시 이 기준을 충족한 국가는 3곳에 불과했다. 현재는 31개국 중 18개국이 이 목표를 달성한 상태다.
유럽의 이 같은 움직임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지정학 리스크가 커진 데서 비롯된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국제 정세가 한층 거칠어졌다”며 “유럽의 국방력 증강은 장기적 관점에서 자체 안보를 강화하기 위함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속해서 공급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했다.특히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과 관련해 “우리는 경고 신호를 이해하고 있으며, 여기에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NATO 회의론자’이자 ‘고립주의자’로 알려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동맹국에 대한 집단방위 체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NATO의 근간인 집단방위 조약 5조는 다른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상호방위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NATO 사무총장 역시 이날 기자회견에서 “NATO가 제공하는 억지력의 신뢰성을 우리 스스로 훼손해선 안 된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에 맞섰다. 다만 유럽 국가들이 방위비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오는 15일 열리는 NATO 국방장관회의에서 탄약 생산 확대 등 전력 증강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라며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유럽의 이 같은 기조는 2027년까지 세계 4대 방산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한국 정부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은 한국 방산업체들의 최대 수출 무대로 떠올랐다. 한국은 무기 수요가 많은 폴란드를 중심으로 작년에만 1조5000억원 넘는 수출 실적을 올렸다. 경공격기 FA-50 수출 ‘잭팟’으로 항공기 수출액이 사상 처음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넘어서기도 했다.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