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굴러들어온 복덩이를 내차려는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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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兆 무기 팔려면 수은法 바꿔야“국회가 계속 외면하면 최대 30조원 수출이 무산됩니다. 임직원 모두 여의도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국회 통과 무산시 獨에 빼앗길 것"
김형규 산업부 기자
다음주는 한국 방산업계에 ‘운명의 주간’이다. 이때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폴란드에 무기를 수출할 수 있어서다. 이번 국회에서 무산되면 4월 총선 이후 구성되는 새로운 국회에서 다시 발의해야 한다. 새 판이 짜이는 만큼 어떤 형태로 법안이 오를지, 언제쯤 통과될지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 된다. 이렇게 불투명성이 커지면 폴란드 정부의 마음이 돌아설 수도 있다는 게 방산업계의 걱정이다.현행법상 수은은 특정 차입자에 자기자본(18조원)의 40%(7조2000억원)가 넘는 돈을 대출해줄 수 없다. 1차 계약에서 이미 6조원을 소진한 터라 2차 계약을 진행하려면 법 개정을 통해 자기자본을 늘려야 한다. 폴란드 정부가 사기로 한 무기는 현대로템의 K-2 전차,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 로켓 등 최대 30조원에 달한다. 유지·보수(MRO) 서비스까지 합친 실제 수출액은 5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처럼 방산에서도 글로벌 기업이 나올 기회를 스스로 차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헝가리, 체코는 2001년 러시아 전투기를 교체하기 위해 미국 기업과 계약을 맺었지만 소극적인 금융 지원으로 계약이 무산됐다. 다음해 미국 정부는 폴란드에 F-16 전투기를 수출할 때 100% 금융 지원을 해줬고, 비로소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새로 들어선 폴란드 정부는 “한국 기업과의 방산 계약을 재검토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폴란드 신임 국방장관은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한국 정부의) 금융 조건이 수용 가능한 수준에서 이뤄져야 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대책회의를 하려고 모여도 방법이 없어 한숨만 쉬고 있다”며 “폴란드 군에서도 한국 국회의 소극적인 태도에 질려 무기 도입을 반대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유럽 방산기업은 한국에 뺏긴 시장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특히 전통의 방산 강국인 독일 기업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독일 라인메탈은 장갑차 ‘링스’의 헝가리 생산공장을 확대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레드백’ 영토를 빼앗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이미 한국 기업이 진출을 추진 중인 루마니아에서 하나둘 따내고 있다. “굴러들어온 보물을 왜 내치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방산업계의 하소연을, 지금이라도 국회의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