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후 주가 90% 폭락에도… 보너스만 80억 챙긴 CEO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전기차 루시드 CEO 보상에 분노한 주주들
테슬라 투자자도 황당... "이런 게 이해상충"

美법원 "머스크 74조 스톡옵션 철회" 판결
"동종업계 CEO 250배 막대한 보상 불공정"
머스크, 시총 800조 늘리고 보수 '0원' 될 판
"업계 평균 CEO는 과연 얼마나 성과를 냈나"
2021년 9월 미국 애리조나주 카사그란데에 있는 루시드모터스 공장에서 간담회를 연 피터 롤린슨 최고경영자(CEO). /한경DB
“루시드 이사회는 작년 말 공개된 차세대 SUV의 획기적 성과에 기여한 최고경영자(CEO)에게 현금 600만달러(약 80억원) 지급을 승인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외신에 짤막한 단신으로 소개된 뉴스에 투자자들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한때 제2의 테슬라로 불리며 고급 전기차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키겠다고 호언장담한 루시드 모터스 이야기입니다. 수십억 보너스를 받는 이 회사의 CEO는 과거 테슬라에서 모델S와 모델X를 개발한 전 수석 엔지니어 피터 롤린슨입니다.이 뉴스를 접한 루시드 주주들은 황당함을 넘어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사회의 발표대로 CEO가 큰 성과를 올렸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는 게 당연하겠지요. 문제는 루시드의 실적과 주가 모두 최악의 상황에 치닫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루시드모터스가 작년 11월 공개한 대형 전기 SUV '그래비티' /루시드모터스

주가 폭락하자 주식 대신 현금 받아

2021년 7월 특수목적법인(SPAC)과 합병하는 형태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루시드는 23.72달러에 첫 거래를 마쳤습니다. 전기차 열풍을 탄 주가는 그해 11월 55달러를 돌파하며 정점을 찍습니다. 제2 테슬라의 영광은 거기까지였습니다. 2년여간 내리막을 탄 주가는 지난달 주당 4달러 선마저 무너졌습니다. 상장 이후 86%, 최고점에서 93% 폭락입니다. 상장 직후 주식을 산 투자자의 계좌는 녹아내렸다는 얘기입니다.롤린슨은 보너스만 많이 받은 게 아닙니다. 2022년 그는 △기본급 57만5000달러 △스톡옵션 550만달러 △주식 보상 3억7300만달러 등 총 3억7900만달러(약 5000억원) 규모의 보상 패키지를 받았습니다. 그의 급여는 대부분 주식으로 구성됐습니다. 하지만 주가가 최고점 대비 10분의 1토막 나자 이사회가 보너스 명목으로 현금을 챙겨준 것으로 보입니다.
루시드 모터스의 상장 이후 주가 추이. /야후파이낸스

“무능한 CEO도 수천억 챙기는데…”

롤린슨의 80억 보너스를 루시드 주주들만큼이나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테슬라 주주들입니다.지난달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은 2018년 테슬라 이사회가 승인한 머스크의 550억달러(약 74조원) 상당의 주식 보상 패키지를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캐서린 맥코믹 판사는 “보상액 규모가 동종업계 CEO가 받은 성과급 중위값의 250배에 달한다”며 “역사상 전례가 없는 막대한 금액으로 일반 주주에게 이해 상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월 3일자 <테슬람이 간다> “머스크, 성과급 74조원 취소”…테슬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참조)
지난 5년 테슬라 주가 추이. /야후파이낸스
2018년 테슬라 이사회가 승인한 보상안에 따르면 머스크는 10년간 시가총액 및 매출 등 실적을 조합해 12단계의 목표를 달성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단계인 시가총액 6500억달러 등을 달성하면 스톡옵션 3억주를 받는 구조입니다. 당시 주주들의 81% 찬성으로 통과됐습니다. 이후 테슬라 주가는 3년 만에 11배 오르며 시총 6500억달러를 돌파했고 함께 약속한 실적 목표도 2022년 말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법원의 판결로 머스크는 스톡옵션 3억주를 잃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시총 90% 를 날린(?) CEO는 출시도 안 한 ‘획기적 차’로 보너스 80억을 받는데, 시총 6000억달러를 늘린 CEO는 3년간 급여 0원을 받을 처지가 됐습니다. 한 테슬라 팬은 X(옛 트위터)에 “나도 (테슬라 이사회를 고소한 소액주주처럼) 루시드 9주를 산 뒤 이사회를 이해 상충으로 고소하고 싶다. 그런데 루시드 법인이 (델라웨어가 아닌) 캘리포니아에 있다”고 비꼬았습니다.
2023년 1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미국 워싱턴에 있는 테슬라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REUTERS

테슬라는 델라웨어를 떠날 수 있을까

머스크는 판결 직후 X(옛 트위터)에 “절대 델라웨어주에 회사를 세우지 마라”며 불만 글을 쏟아냈습니다. 이어 테슬라 법인을 델라웨어에서 텍사스주로 옮기겠다고 밝혔습니다. 스톡옵션 3억주를 잃으면 머스크가 보유한 테슬라 지분은 13%에 불과합니다. 자칫하면 테슬라의 통제권을 잃을 위험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스페이스X와 함께 테슬라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머스크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머스크는 우선 테슬라 외에 본인의 회사를 ‘사법 리스크’가 있는 델라웨어에서 속속 빼내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스페이스X의 법인 등기를 텍사스로 옮겼습니다. 앞서 X와 뉴럴링크는 네바다로 이전했고 보링컴퍼니 역시 이전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위의 기업들은 비상장사이기에 법인 소재지를 옮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문제는 상장사인 테슬라입니다. 주주 투표 등의 절차보다 더 큰 문제는 법적 장애인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테슬라 매장의 외부 간판. /REUTERS
지난 13일 블룸버그는 이사회와 주주들이 찬성하더라도 테슬라가 델라웨어를 떠나기 쉽지 않다는 법적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우선 델라웨어 법원은 텍사스로의 법인 이전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테슬라가 이전하는 걸 막을 수는 있습니다. 델라웨어 기업법에 따르면 회사, 이사회, 지배주주는 일반주주에 대한 신탁 의무를 집니다. 이 신탁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다른 주로 이전을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법원은 머스크의 주식 보상 패키지가 일반주주의 신탁 의무를 저버렸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CEO 편향적인 이사회가 근거없는 천문학적 금액을 지급했다고 보는 겁니다. 따라서 이를 피하려는 목적의 테슬라 법인 이전을 불허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래저래 머스크에겐 불리한 환경입니다. 물론 항소심에서 판결을 뒤집는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지난 1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우파 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이 주최한 정치 회의에 참석해 웃고 있다. /EPA
머스크는 이미 항소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지난 13일 델라웨어주 법원에 항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앞선 판결 집행을 일시 중지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제출했습니다. 항소가 진행되면 최종 판결은 최소 6개월이 걸릴 전망입니다. 연내엔 어떤 쪽으로든 매듭이 지어지겠지요.

머스크와 테슬라의 운명을 가를 이 판결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존 코츠 하버드대 법학 교수는 “델라웨어 법원은 지난 100년간 주기적으로 한두 명의 기업인을 짜증 나게 만든 바 있다”며 “머스크 보상 취소 판결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벳시 앳킨스 벤처기업 바자 CEO는 “행동주의 판사가 CEO 보수를 결정하고 이사회의 결정을 무효로 한다면 기업 혁신 문화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끄는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X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