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 사망 나발니, 독극물 테러도 견딘 푸틴의 '정적'(종합)

푸틴 등 지도부 부정부패 폭로…2021년 수감땐 대규모 시위
생전 암살 가능성 질문에 "그만큼 우리가 강하다는 뜻"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북부 시베리아 감옥에서 47세 나이로 숨진 알렉세이 나발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혀온 야권 지도자다. 푸틴 대통령의 5선이 유력한 대통령 선거(3월 15∼17일)를 한 달 앞두고 사망한 그는 1976년 모스크바 인근 부틴에서 태어나 러시아민족우호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블로그에서 러시아 국영기업들의 비리를 비판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나발니는 2011년 설립한 '반부패재단'을 통해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도 폭로했다.

2011∼2012년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던 그는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해 2위를 차지했다. 2015년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던 야권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가 괴한 총격으로 사망한 이후에는 더욱 많은 지지를 받게 됐다.

2018년 대통령 선거에도 도전하려고 했지만 과거 지방정부 고문 시절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을 둘러싼 피선거권 자격 논란이 불거져 출마하지 못했다.

AFP 통신은 나발니를 "푸틴에 대한 가장 노골적인 비판가"라고 표현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 대통령에게 경종을 울린 러시아에 남은 몇 안 되는 목소리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그 가족,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비롯한 측근들의 비리를 공개해 반향을 일으켰다.

나발니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폭로 영상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는 수만 명이 참여한 거리 시위를 촉발했다. 2021년에는 러시아 겔렌지크에 대규모 휴양시설 '푸틴의 비밀 궁전'이 있다고 주장, 푸틴 대통령의 '눈엣가시'가 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 시설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나발니를 '그 사람', '블로거', '베를린의 환자' 등으로 칭하며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는 2017년 모스크바에서 괴한이 뿌린 약물에 오른쪽 눈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의문의 독극물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2020년 8월 나발니는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검사 결과 옛 소련 시절 개발된 군사용 신경작용제 노비촉 계열 독극물이 검출돼 푸틴 대통령이 배후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독일로 긴급 이송돼 치료받은 나발니는 2021년 1월 러시아로 '대담하게' 귀국했으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당국에 체포돼 수감됐다.

나발니가 체포되자 러시아에서는 전국적으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수천 명이 집회에 참여했다가 구금됐다.

"나는 두렵지 않으며 여러분도 두려워하지 말기를 요청한다"고 말한 나발니는 결국 2014년에 기소된 사기죄로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시작했다.

지난해 3월에는 횡령, 법정모독 혐의 유죄 판결로 징역 9년, 같은 해 8월에는 극단주의 활동 선동 혐의로 징역 19년을 추가로 선고받아 총 30년 이상의 징역형을 살게 됐다.

그는 교도소에서 러시아 정부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나발니는 모스크바에서 약 235㎞ 떨어진 멜레코보에 있는 제6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지난해 12월 추위 등 혹독한 환경 때문에 '북극의 늑대'로 불리는 제3교도소로 옮겨졌다.

이감 당시 약 3주간 행방이 알려지지 않아 국제사회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나발니는 허리 통증을 약화하는 치료를 적절히 받지 못했고 수시로 잠을 깨우는 교도관 때문에 수면 부족을 겪었으며 '푸틴의 연설'을 들어야 하는 등 힘든 수감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달에는 수감 중인 감옥에서 한국기업 팔도의 컵라면 '도시락'을 여유롭게 먹고 싶다며 식사 시간 제한 폐지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했다.

나발니는 변호사 등 자신의 팀을 통해 텔레그램 채널을 관리했는데 마지막 게시물은 사망 이틀 전인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에게 바치는 메시지였다. 과거 나발니는 미국 CNN 인터뷰에서 암살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들이 나를 죽이기로 했다면 우리가 믿을 수 없는 만큼 강하다는 뜻이고 우리가 그 힘을 사용해야 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