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시신 행방불명…"푸틴과 깡패들" 미·러 갈등 악화 예고

나발니 측근 “푸틴, 살해 지시 후 은폐”
러, 추모 행사서 수백명 구금
사진=AFP
옥중에서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시신의 행방이 묘연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암살 지시 의혹이 커지고 있다. 나발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더욱 악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나발니 측근들 “푸틴, 살해 지시 후 은폐”


17일(현지시간) 나발니 측근들은 그가 살해됐으며 러시아 당국이 흔적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신을 넘겨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나발리의 모친 류드밀라 나발나야는 아들이 숨진 교도소 인근 마을 살레하르트 소재 영안실을 찾았지만,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모친은 아들의 시신을 검시가 끝난 뒤에 넘겨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교도소 관계자들은 나발니 모친에게 1차 검시에서 사인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아 추가 검시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발니 대변인인 키라 야르미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발니가 살해됐으며 푸틴이 직접 그 명령을 내렸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나발니의 동료인 이반 즈다노프는 소셜네트워크에 나발니의 모친과 변호사가 사인이 ‘돌연사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글을 올렸다.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발니 사망 이틀 전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당국자들이 해당 교도소를 방문해 일부 보안 카메라와 도청 장치 연결을 끊고 해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국 더타임스는 러시아 연방교정국(FSIN) 지부 보고서에서 이같이 언급됐다고 활동가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서방국은 푸틴 책임론을 강조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나발니 사망 소식이 전해진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푸틴은 우크라이나 등 다른 나라의 국민을 공격할 뿐 아니라 자국민을 상대로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우리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발니의 죽음이 푸틴과 그의 깡패들이 한 어떤 행동에 따른 결과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비난했다.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들은 러시아 당국에 나발니 사망 경위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크렘린궁은 이런 주장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다만 나발니의 대변인 주장에 대한 논평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폭로한 나발니는 16일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 지역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혹독한 환경으로 악명 높아 ‘북극의 늑대’로 불리는 곳이다. 나발니는 2011년 창설한 반부패재단을 통해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반정부 운동을 이끌어 ‘푸틴의 최대 정적’으로 꼽힌다.
사진=로이터

○러, 나발니 애도 분위기 경계…“400여명 체포”


나발니의 죽음은 미국과 러시아 간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국내 정치 탄압을 두고 미국과 러시아가 대치하고 있는 예민한 시점에 이번 사망 사건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영토주권 훼손과 권위주의에 따른 인권유린은 미국이 강조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제질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안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아직 나발니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 러시아의 공식 발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전 세계 곳곳에서는 나발니 추모 열기가 뜨겁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폴란드 등에선 나발니 추모 행사와 푸틴 대통령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가 사망한 이후 민심이 흔들리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모스크바 검찰은 불법 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곳곳에 임시로 마련된 나발니 추모 장소에 모여 있던 시민 400명 이상이 구금됐다고 현지 인권단체 OVD인포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는 2022년 9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예비군 동원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려 약 1300명이 체포된 이후 최대 규모다. 러시아에서는 32개 도시에서 나발니 추모 행사가 열렸다. 외신에는 체포되는 시민들의 사진이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폭압 통치를 이어가고 있는 푸틴 대통령을 막아서기엔 역부족이란 지적도 나온다. 나발니의 죽음으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실질적으로 남아있던 푸틴의 마지막 정적이 제거되면서 푸틴 권력이 오히려 공고화될 수 있다. 스탄틴 소닌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는 “이제 러시아에서 푸틴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가능할지 불분명하다”고 우려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