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용의 한류이야기] 백 엔드 산업 확대, 한류의 또 다른 미래

인기 콘텐츠의 뒷심은 CG, VFX 등 기술
콘텐츠 제작과 기술의 협력·융합이 중요

진달용 사이먼프레이저대 특훈교수
‘신과 함께’(2017), ‘기생충’(2019), ‘오징어 게임’(2021), ‘정이’(2023), ‘노량: 죽음의 바다’(2023) 등 최근 인기를 끈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백 엔드(back-end) 산업이라고 불리는 컴퓨터그래픽(CG), 시각 특수효과(VFX), 그리고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됐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상류층을 상징하는 이층집은 단층 건물에 특수효과를 이용한 결과물이다.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는 물 한 방울 없는 세트장에서 특수효과를 통해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영화 ‘정이’ 제작에도 특수효과와 AI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백 엔드는 문화산업계에서 ‘후위 처리’ 제작 분야라고도 부른다. CG와 VFX, 최근에는 AI 기술을 이용해 드라마와 영화 등을 제작하는 핵심 영역으로 간주된다. 한국 콘텐츠 제작에서 백 엔드 기업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국내의 CG 관련 기업은 2021년 기준 100개 이상으로 종사 인력은 2000명이 넘는다. 해당 기업들의 수익은 2010년의 1630억원에서 2021년 3483억원으로 급성장세를 보였다.

백 엔드 기업들은 최근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나가면서 할리우드 영화 제작 등에도 참여하는 등 글로벌 기업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 백 엔드 기업들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백 엔드 기업들이 국제 영화제 등에서 잇따라 수상하면서 외국 콘텐츠 기업들과 대규모 제작 계약을 맺고 있다. 가족 스포츠 코미디 영화인 ‘미스터 고’(2013)의 시각효과를 담당했던 한 기업은 여러 중국 영화의 특수효과를 도맡아 제작하기도 했다.

한국 영화계는 최근 들어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수출이라는 측면에서는 웹툰을 앞세운 만화산업에 뒤지고 있고, 과거와 달리 자주 천만 관객 영화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산업계는 백 엔드 기업을 통해 디지털 기술 수출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한류를 선보이고 있다.CG와 특수효과 외에 음악 효과와 3D(3차원) 모델링 같은 백 엔드 기술 역시 새로운 한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백 엔드 산업이 영화나 디지털 게임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TV 프로그램에까지 사용되면서 한류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3차원 세계를 만들어가는 3D 모델링 기술은 2022년 기준 전체 그래픽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에 불과하나 2030년까지 무려 50% 이상이 될 전망이다.

한류는 이제 방송·영화·게임 등 콘텐츠 제작 및 수출 전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문화산업계와 CG, 이미지 효과, 사운드 효과, 3D 모델링 등 기술기업의 협력·융합에 크게 의존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한류의 지속 가능성이 고품질 콘텐츠에 달린 만큼 이들 첨단 백 엔드 기업들의 성장을 통해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 한류의 미래는 백 엔드 기업을 어떻게 지원하고 활용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