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 현장 멀리하면 직무유기…제조업 유니콘 꼭 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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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실용주의자.’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부산 동행 인터뷰
中企·벤처, 글로벌화 없인 성장 한계…지원책 고민
21개인 중기부 'GBC' 더 늘리기보단 효율 높일 것
대사관을 中企 수출 허브로…KOTRA도 활용
'오영주표' 포장 관심없어…기업인 목소리에 답 있다
공식 취임 50일을 맞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대한 관가 안팎의 평가다. 그동안 오 장관과 대면한 중소·벤처기업 대표, 중소기업 관련 기관·단체장 사이에서도 “현안 진단과 처방을 똑 부러지게 얘기하니 시원시원하다”는 반응이 공통적으로 나온다.지난 14일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부산 현장 방문 일정을 동행 취재하는 내내 오 장관은 원고나 서류 한 장 없이 모든 현장에서 필요한 말을 술술 끄집어냈다. 각 기업 대표 등 현장 간담회 참석자들이 쏟아내는 애로사항을 단번에 이해했고, 조속한 해결책 마련을 약속했다. 오 장관의 취임 일성은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었다. 그는 “중기부 장관이 현장을 멀리한다면 그 자체가 직무유기”라며 “기업인들의 목소리에 모든 답이 있다”고 했다. 장관 후보자 시절부터 전국 현장을 돌며 광폭 행보에 나섰던 이유다.
#이날 첫 일정은 부산중소벤처기업청에서 열린 해외 진출 중소기업 간담회. 해외 현지에 진출해 시장 변화를 경험해 본 중소·벤처기업 대표들이 참석해 장관과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중기부가 상반기 내놓을 중소기업 글로벌 전략은 오 장관이 공들이는 ‘1호 시그니처 정책’이다.
▷글로벌 진출을 계속 강조하시네요.“외교관 출신이어서 글로벌을 외치는 건 아닙니다. 국내 중소·벤처·스타트업이 해외 시장을 겨냥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고 있고, 간담회 등에서 만난 모든 분들이 같은 얘기를 합니다.”
▷종합 지원 대책이 나옵니까.
“중기부 내 전담부서를 만들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 올 상반기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을 겁니다. 지금도 현장에서 그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21개인 중기부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단순히 숫자만 늘리는 게 묘수일까요.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효율을 높이는 방법도 있어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해외에 있는 대사관 공관, KOTRA를 교두보로 사용할 수 있겠죠. 제가 베트남대사를 할 때 집중했던 것도 국내 기업들의 현지 진출 지원이었어요. 당연히 중기부와 외교부가 협업할 겁니다.”
▷해외 공관을 GBC처럼 활용한다는 얘기인가요.
“모든 애로를 푸는 ‘원스톱 스팟’이 되는 것입니다. 현지 공공기관을 관할하고 주재국 정세를 가장 잘 아는 우리 대사관이 중소기업 지원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면 훨씬 쉽게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KOTRA를 중기부 산하에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느 부처 산하기관이냐가 아니라 중소기업을 위한 전략적 활용 방안을 제시하느냐입니다. 129개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KOTRA의 네트워크와 인재풀을 이용하는 전략적 관계로 가야죠. KOTRA와 이 문제도 곧 협의할 겁니다.”
▷수출기업 간담회에서 해외 전시회 참가 지원의 공정성 얘기가 나왔습니다.
“당장 올해부터 해외 전시회 기회를 잡고 싶은 개별 기업들이 중소기업중앙회에 가입된 협회·단체에 소속돼 있지 않더라도 공정한 과정을 거쳐 선발되도록 바꿔나갈 계획입니다.”
▷마침 중기중앙회 정기감사 시기인데요.
“중기중앙회뿐만 아니라 여러 산하기관이 대상입니다. 갑자기 하는 건 아니고 정기감사예요. 산하기관 감사가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디부터 언제 할지 검토 중입니다.”
#수출 기업인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오 장관은 부산 방송국의 녹화방송 촬영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오후에는 한국해양대에서 열린 ‘부산 글로벌 혁신특구 간담회’에 앞서 해양대 실습선 한나라호를 시찰했다. 직접 기관실에서 배를 디지털 시운전하고 관계자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주도했다. 혁신특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시설도 둘러봤다.
▷친환경 선박에 관심을 보이시던데요.
“사실 좀 놀랐어요. 중소기업 10여 곳이 모여 각각의 기술을 융합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요. 교수님과 기업인들이 이렇게 열심히 하면 정부도 나서야죠. 우리나라가 전기차, 수소차 같은 친환경차는 앞서 있지만 친환경 선박은 상대적으로 뒤처졌어요. 수소차에 정부가 국가보조금을 지원해주듯이 친환경 선박 사업에도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혁신특구 간담회 때 인프라 50% 지원을 약속한 건가요.
“중기부는 중소기업을 위해 뛰는 부처입니다. 아까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구개발하는지 다 봤잖아요. 사실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을 따와야 하는 문제지만, 꼭 50%를 지원하게 만들겠다는 제 의지를 말씀드린 겁니다.”
▷현재 네 곳의 혁신특구를 지정했습니다. 추가 지정 계획도 있나요.
“올해는 4개 특구 예산만 확보돼 있기도 하고, 일단 네 곳 먼저 잘 자리 잡게 한 뒤 추가 지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처음으로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적용해 명시적인 제한과 금지 사항 외에는 모든 실증을 허용해 줄 방침입니다.”
▷외교관 출신 중기부 장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해봤는데요. 외교관들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항상 협상을 해온 사람들이에요. 뭔가를 얻기 위해 칼을 먼저 뽑거나 막 휘두르지 않죠. 상대방과 어떤 것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이 상황의 좋은 점을 먼저 보려고 합니다. 중기부 장관도 그래야죠. 산하기관 수장들이 갖고 있는 역할을 존중해주면서 서로의 생각 차이가 있다면 대화를 통해 맞춰가면 됩니다. 외교부에서 쌓은 36년 경험을 모두 끌어내겠습니다.”
▷어떤 장관이 되고 싶습니까.
“‘오영주표 정책’? 이렇게 생색내거나 포장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임기가 다 끝난 뒤에 ‘중기부에 맞는 일을 잘 해냈다’는 평가만 받고 싶습니다. 전 정치인이 아니라 일하는 공무원이니까요. 임기 내에 제조업종에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사)이 배출되는 걸 꼭 보고 싶어요.”
회의할땐 구두 신고 현장에선 운동화로 식당서 보고 받기도
격식 안 따지는 실용주의자
지난 14일 오전 부산 수출 중소기업과의 간담회가 열린 부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짙은 와인색 롱재킷과 바지 정장을 갖춰 입고 반짝이는 살색 구두를 신었다. 점심을 먹는 식당, 초반에 기업인들이 약간 쭈뼛거리자 오 장관은 “제 고향이 마산인데요”라며 사투리에 관한 개인 경험으로 분위기를 풀었다. 기업인들은 “중기부 장관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나서주시니 우리 기업들이 힘이 난다”고 입을 모았다.이후 한국해양대의 실습선 내부를 둘러보는 일정. 계단이 좁고 가팔랐다. 어느새 오 장관은 새하얀 운동화로 갈아신은 상태였다.
이어지는 일정은 박형준 부산시장과 함께하는 혁신특구 참여 기업들과의 간담회. 차로 1분 거리에 있는 건물로 이동했다. 운동화 차림이던 오 장관의 신발이 단정한 블랙 하이힐로 바뀌어 있었다.
공식 일정을 마친 뒤 오 장관은 부산역으로 이동했다. 저녁 식사 메뉴는 기차역 푸드코트에서 파는 1만원짜리 순두부찌개. 내일 업무를 위해 담당 부서 직원의 업무보고를 받으며 식사를 마쳤다. 기차를 타러 가는 길, 오 장관은 아마도 두 켤레의 구두가 들어 있을 검은색 백팩을 둘러메고 다시 운동화 차림으로 기차에 올랐다.
■ 오영주 장관은…△1964년 경남 마산 출생
△1986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5년 미국 UC샌디에이고 국제관계학 석사
△1988년 제22회 외무고시 합격
△2013년 외교부 개발협력국 국장
△2015년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
△2020년 외교안보연구소 소장
△2022년 주베트남대사
△2023년 외교부 제2차관
△2023년 12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부산=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