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를 춤으로 빚어낸 ‘지차청록’… 이런 자태가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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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박종영의 아트차이나‘지차청록(그저 청록이면 그뿐)’은 2021년 첫 공연을 한 이후로 중국 각 도시를 순회하며 100회가 넘는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제작사는 동방연예그룹으로 1952년 설립된 중앙가무단, 1962년 설립된 동방가무단이 그 전신으로 72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춤으로 피어난 왕희맹의 천리강산도
이 공연은 북송시대 왕희맹의 그림 ‘천리강산도’를 무용으로 연계하여 연출한 작품이다. 주인공 ‘멍칭양(孟庆旸)’은 한 인물의 역할이 아닌 산수화 속 추상적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성공하였다. 단순하면서도 산수화의 색상을 잘 드러낸 청록색의 의상과 고아한 시선처리, 몸으로 그려내는 미학적 매력, 특히 일명 ‘청록허리(青绿腰)’로 불리는 고난도 동작의 자태는 관객의 감탄을 자아내었다.천리강산도는 중국 북송시대 산수화 작품으로 이음새 없는 12m 비단에 채색된 두루말이 그림이다. 전통 산수화의 화법에 청록색과 황갈색을 대비시켜 수려하고 아름다운 산수화를 그린 왕희맹은 궁정화가로 송나라 휘종에게 직접 사사받았으며 약 6개월에 걸친 대작 천리강산도를 완성하였다. 이 때가 왕희맹의 나이 18세였고 아깝게도 20세에 요절하게 되어 ‘천리강산도’ 하나의 대작 만을 남기게 되었다. 작품 속 청록의 색상이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유지되는 비결은 광물에서 채취한 특별한 염료속 미네랄 성분 때문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10대 산수화 걸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후에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공연에서 LED로 제작된 두루말이 위에 청록빛 산수화를 펼쳐내어 전세계인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원작은 현재 베이징의 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고궁 안의 유명한 ‘고궁각루까페’는 내부를 온통 천리강산도로 장식하였다.‘지차청록’ 무용공연은 무대 위에서 왕희맹 역의 독무 무용수가 혼신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고 군무 무용수들은 그의 손놀림에 따라 그림 속 자연이 된다. 최대한 소박하고 장중한 청록색의 의상과 과장되게 우뚝솟은 머리모양에는 여타의 무용공연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장신구는 하나도 쓰지 않았다. 무용은 추상적인 기법과 느린 동작을 주로 구사하였는데, 속된 속박에서 벗어나 한없이 고상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원래 중국의 고대 무용은 사색를 중시하는 동양철학의 정신에 바탕한다. 음양오행에 따른 자연 속 존재 현상처럼 ‘기(氣)’가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며 힘이 부드럽게 응축되기도 하고 짧고 강렬하게 폭발하기도 한다.
춤 ‘지차청록’은 산수화 그 자체이다. 춤을 추는 사람과 자연의 산과 물과 바람의 흐름에 따라 완전한 하나가 되어 몰아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도 시각과 청각을 통하여 이에 몰입하게 된다. 이를테면 느릿느릿한 동작들은 마치 겹겹이 이어지는 산들과 강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만 같고, 때로 독무자의 급하고 짧게 컷팅하는 동작은 응축된 생명력이 폭발하듯 강한 바람을 떠오르게 한다. 높게 틀어올린 머리모양에 허리를 서서히 뒤로 과장되게 젖히는 동작은 그림 속의 산봉우리들을 연상시키는데 이렇게 극적이며 아름다운 인상을 주는 동작은 ‘청록허리’라는 별칭이 붙여지며 공연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된다. 이렇듯 산천을 춤추며 인체와 자연이 일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는 ‘천리강산도’의 예술적 수준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직 청록’이라는 춤의 높은 수준이 잘 결합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