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 퍼냈는데 쓸 곳이 없다"…美 천연가스 가격 30년만 최저 [원자재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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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허브 선물, 한 달 새 50% 넘게 하락
네덜란드 TTF 22%↓…동북아서도 23%↓
공급 사상 최대인데 기온 올라 수요 둔화
미국 천연가스 가격이 약 30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공급이 사상 최대치로 늘어났지만, 온화한 날씨 덕에 수요가 한풀 꺾인 영향이다.미국 천연가스 시장의 벤치마크로 기능하는 헨리허브(HH) 천연가스 선물 3월 인도분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ME)에서 100만BTU(열량 단위)당 1.61달러에 마감했다. 최근 약 한 달 새 50% 넘게 가라앉은 가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수요가 급감했던 2020년 중반 때 며칠을 제외하면 1995년 이후 최저”라고 전했다.
미국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유럽 천연가스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TTF 선물 가격은 현재 1메가와트시(㎿h)당 25유로에 거래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22% 하락했고, 유럽 에너지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22년 여름 때에 비하면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에너지 시장 조사업체 아거스에 따르면 동북아 지역으로 운송되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도 올해 23% 미끄러졌다.15년 전 ‘셰일 혁명’으로 시작된 공급 과잉이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다. S&P글로벌코모디티인사이츠에 따르면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작년 12월 하루 1050억입방피트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뒤, 올해 1월 소폭 감소했다가 2월 들어 다시 회복됐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주 기준 미국의 가스 재고량은 약 2조5400억입방피트인데, 1년 전보다 11%, 최근 5년 평균 대비 16% 많은 수준이다.기온 상승에 따른 수요 둔화도 한몫했다. 최근 1년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은 산업화 이래 처음으로 1.5도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가 미국에서 신뢰할 만한 기록이 있는 1950년 이래 ‘가장 따뜻한’ 겨울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탄소 배출이 많은 석탄의 대체 연료로서 가스 선호도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난방일수는 지난 20년간 7% 감소했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최근 오대호를 뒤덮은 얼음의 면적이 사상 최저로 줄어들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기상 관련 컨설팅 업체인 코모디티웨더그룹(CWG)의 매트 로저스는 “(천연가스 가격이) 말도 안 된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파괴적(devastating)이라는 단어를 쓰긴 싫지만, 수요 둔화로 인해 저점 아래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시장에선 가스 공급업체들이 자체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루크 라센 S&P글로벌 연구 책임자는 “현재의 공급 수준이 유지된다면 여러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생산 중단을 예상해 볼 수도 있다”고 짚었다.가격 하락에 따라 마진 압박을 받고 있는 일부 기업들은 실제로 가스 시추 계획을 축소했다. 콤스탁리소시스는 가동 시추 장비 개수를 7개에서 5개로 줄이고, 천연가스 가격이 반등할 때까지 배당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안테로리소시스도 장비 수를 3개에서 2개로 줄이고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미 최대 천연가스 생산업체로 꼽히는 EQT 역시 감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토비 라이스 EQT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애널리스트들에게 “단기적으로는 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올해 남은 기간 가격 수준에 따라 생산량을 줄일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했다.미 천연가스 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당분간 지속될 거란 전망이다. UB뱅크의 원자재 부문 책임자인 찰리 맥나마라는 “2024년은 사실상 하락장으로 마감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시장에선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거란 의견이 공식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네덜란드 TTF 22%↓…동북아서도 23%↓
공급 사상 최대인데 기온 올라 수요 둔화
미국 천연가스 가격이 약 30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공급이 사상 최대치로 늘어났지만, 온화한 날씨 덕에 수요가 한풀 꺾인 영향이다.미국 천연가스 시장의 벤치마크로 기능하는 헨리허브(HH) 천연가스 선물 3월 인도분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ME)에서 100만BTU(열량 단위)당 1.61달러에 마감했다. 최근 약 한 달 새 50% 넘게 가라앉은 가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수요가 급감했던 2020년 중반 때 며칠을 제외하면 1995년 이후 최저”라고 전했다.
미국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유럽 천연가스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TTF 선물 가격은 현재 1메가와트시(㎿h)당 25유로에 거래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22% 하락했고, 유럽 에너지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22년 여름 때에 비하면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에너지 시장 조사업체 아거스에 따르면 동북아 지역으로 운송되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도 올해 23% 미끄러졌다.15년 전 ‘셰일 혁명’으로 시작된 공급 과잉이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다. S&P글로벌코모디티인사이츠에 따르면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작년 12월 하루 1050억입방피트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뒤, 올해 1월 소폭 감소했다가 2월 들어 다시 회복됐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주 기준 미국의 가스 재고량은 약 2조5400억입방피트인데, 1년 전보다 11%, 최근 5년 평균 대비 16% 많은 수준이다.기온 상승에 따른 수요 둔화도 한몫했다. 최근 1년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은 산업화 이래 처음으로 1.5도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가 미국에서 신뢰할 만한 기록이 있는 1950년 이래 ‘가장 따뜻한’ 겨울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탄소 배출이 많은 석탄의 대체 연료로서 가스 선호도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난방일수는 지난 20년간 7% 감소했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최근 오대호를 뒤덮은 얼음의 면적이 사상 최저로 줄어들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기상 관련 컨설팅 업체인 코모디티웨더그룹(CWG)의 매트 로저스는 “(천연가스 가격이) 말도 안 된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파괴적(devastating)이라는 단어를 쓰긴 싫지만, 수요 둔화로 인해 저점 아래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시장에선 가스 공급업체들이 자체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루크 라센 S&P글로벌 연구 책임자는 “현재의 공급 수준이 유지된다면 여러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생산 중단을 예상해 볼 수도 있다”고 짚었다.가격 하락에 따라 마진 압박을 받고 있는 일부 기업들은 실제로 가스 시추 계획을 축소했다. 콤스탁리소시스는 가동 시추 장비 개수를 7개에서 5개로 줄이고, 천연가스 가격이 반등할 때까지 배당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안테로리소시스도 장비 수를 3개에서 2개로 줄이고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미 최대 천연가스 생산업체로 꼽히는 EQT 역시 감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토비 라이스 EQT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애널리스트들에게 “단기적으로는 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올해 남은 기간 가격 수준에 따라 생산량을 줄일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했다.미 천연가스 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당분간 지속될 거란 전망이다. UB뱅크의 원자재 부문 책임자인 찰리 맥나마라는 “2024년은 사실상 하락장으로 마감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시장에선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거란 의견이 공식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