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발버둥 쳐도 중국 손아귀…'하얀 석유' 늪에 빠진 한국 [지정학포커스]

'하얀 석유' 리튬, 매장량 5위 중국이 쥐락펴락하는 비결 보니

리튬 제련 공정 독점한 中…배터리업계 의존도↑
칠레 등 '리튬 삼각지대'는 자원 민족주의 가속화
리튬 가격 1년 3개월 새 85% 폭락…"투자는 적기"
해외 투자 나선 韓, 칠레·호주 등 공급망 다변화
美 IRA 등 견제 노력에도…"단기간 脫중국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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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석유' '백색 황금'이라 불리는 리튬을 놓고 각국의 자원 패권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리튬 매장량 세계 1위인 칠레는 지난해 리튬 국유화를 선언했다. 전 세계 리튬의 70%가량이 매돼 있는 이른바 '리튬 삼각지대' 칠레와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엔 '자원 민족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 배터리업계의 고민은 다른데 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중국의 리튬 매장량은 세계 5~6위 수준으로 칠레 등에 크게 못 미친다. 문제는 제련 능력이다. 원광을 배터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련하는 공정을 사실상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의 필수 요소인 리튬의 공급망을 다변화하지 못하면 국가 차원에서 경제안보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관련 업계는 물론 정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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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 제련 공정 70% 중국 의존"


리튬은 밀도가 가장 낮은, 가장 가벼운 금속성 원소다. 칼로 자를 수 있을 정도로 무르다. 물과 공기에도 쉽게 반응한다. 리튬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곳은 리튬이온 배터리다. 그러면서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리튬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용 리튬 수요는 지난해 52만9000t LCE(탄산리튬 환산 기준)에서 2030년 273만9000t LCE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배터리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 등 4가지 주요 요소로 구성된다. 이 중 배터리의 용량과 전압을 좌우하는 양극재의 핵심 소재가 리튬이다. 다만 리튬은 순수한 형태로는 활용이 어려워 화합물로 가공해 사용한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 화합물의 종류는 크게 수산화리튬과 탄산리튬으로 구분된다.

리튬은 광산에서 채굴하거나 염호에서 추출하는데, 순수한 리튬을 얻으면 용도에 맞게 제련하는 공정이 필수다. 가열이나 여과 같은 추가적인 가공을 통해 수산화리튬과 탄산리튬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공정은 중국 점유율이 70% 정도로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리튬 원광은 대부분 남미 지역에 몰려 있지만, 각국의 배터리 업체들이 중국 리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정제된 리튬에 대한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의 중국 의존도는 8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련 공정을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이유는 환경적인 요인이 크다. 리튬 제련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유발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데, 상대적으로 환경 규제가 느슨한 중국이 이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도 장점이다.미국에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배터리 제련 분야에서의 중국 독주를 견제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에서 채굴하고 가공한 광물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다. 중국을 겨냥한 조치였지만, 이미 리튬 공급망이 촘촘이 엮여 있어 중국 기업만 떼 놓고 견제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남미의 리튬 생산 동향도 바뀌고 있다. 국유화를 선언한 칠레는 민관합작 기업 설립을 본격화하하고 있고, 볼리비아는 이미 2008년부터 리튬을 국유화한 상태다. 멕시코도 지난해 리튬 국유화를 선언했다. 아르헨티나도 리튬을 전략 광물로 지정하고 기업들의 채굴권을 중단시켰다.

'리튬 강국' 간 합종연횡도 이어지는 중이다. 칠레 정부와 아르헨티나 정부는 리튬과 솔트플랫을 연구하는 실무 그룹을 설립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일종의 '리튬 동맹'을 만든 셈이다. 또 이 남미 국가들은 석유수출기구(OPEC)처럼 리튬 공급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튬판 OPEC'도 추진 중이다.다만 리튬 가격은 최근 많이 떨어졌다. 2022년 11월 ㎏당 581.5위안에 달했던 탄산리튬 가격은 최근엔 88위안 수준으로 7분의 1토막났다. 전기차 시장이 둔화된 데다가 해외에서 신규 광산이 발견되는 등 공급 과잉 현상이 겹친 탓이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는 배터리 수요가 늘 것으로 보여 리튬 광산에 투자한다면 지금이 '투자 적기'라는 분석이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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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의존도 낮추기 쉽지 않다"

국내 배터리업체들은 리튬 관련 해외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배터리 소재를 만드는 LG화학은 지난해 미국 광산업체 피드몬트리튬에 약 1000억원을 투자했다. 또 LG에너지솔루션은 올 초 호주 리튬 생산 업체인 웨스CEF와 리튬 정광 공급계약을 맺었다. SK온은 호주 레이크리소스에 지분 10%를 투자했다.

지난달엔 칠레 외국인 투자유치기관인 인베스트칠레가 한국 배터리 회사 대표들과 면담해 칠레에 리튬 공장 설립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칠레에 리튬 공장을 세우면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IRA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탈중국'을 이뤄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KOTRA 선양무역관은 "한국은 리튬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높은 실정"이라며 "특히 양극재와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관련 소재인 수산화리튬의 대중국 의존이 심화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배터리 대기업 관계자는 "칠레나 유럽 등에서 제련 공정을 현지화하는 작업도 이뤄지고는 있다"면서도 "다만 환경단체 반발 같은 이슈에 부딪히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몇 년 간은 중국 의존에서 탈피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