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처럼 뿌연 선으로 잡아낸 풍경

장재민 개인전

"어둠의 느낌을 그림에 담고 싶어"
장재민 작가.
장재민 작가(39)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천착한다. 예컨대 물비린내가 뒤섞인 눅눅하고 기묘한 냄새(2017년 종근당 예술지상 전시), 깜깜한 숲 속 몇 마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 부엉이들의 울음소리(2020년 학고재갤러리 전시)처럼. 물론 후각이나 청각 등 볼 수 없는 것들을 시각예술인 그림에 담는 건 쉽지 않다. 20대 때부터 ‘젊은 작가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 온 장 작가가 끊임없이 기법과 재료를 바꿔 가며 실험을 거듭하는 이유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4년 만에 열린 그의 개인전 ‘라인 앤 스모크’에는 새로운 실험의 결과물 22점이 나와 있다. 라인 앤 스모크는 ‘연기처럼 뿌연 선’으로 풍경을 잡아냈다는 의미다.
깊은 웅덩이 끝.
가장 중요한 변화는 재료가 바뀌었다는 것. 장 작가는 그간 써온 유채 물감을 버리고 수성인 아크릴 과슈를 썼다. 두껍고 광택이 있는 유화와 달리 과슈는 가볍고 반투명하게 쌓아 올릴 수 있다. 작가는 “취미가 밤낚시인데, 고요한 낚시터에 혼자 덩그러니 있다 보니 땅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다”며 “어둠 속에서는 눈 말고 다른 감각들을 쓰게 되는데, 그 일상과 다른 느낌을 그림에 생생하게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써온 재료를 바꾸는 건 쉽지 않았다. “어떤 풍경이나 사물을 처음 봤을 때 처음으로 받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새로운 모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료를 바꾸고 나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고 여러 작품을 버려야 했습니다. 모르는 언어를 새로 배우는 것 같은 고통이 따랐어요. 하지만 허공에 떠다니는 듯한 감각을 표현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아서 만족합니다.”
이런 모호한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전시 구성에도 공을 들였다. 예컨대 제주 쇠소깍을 그린 대형 풍경화는 벽에 설치하는 대신 비스듬히 벽에 기대 세웠다. 대형 캔버스를 앞뒤로 붙인 뒤 천장에 매단 작품도 있다. 작가는 “붕 떠 있는 느낌을 극대화하고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려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어둡고 모호한 분위기의 추상화 작품 특성상 컴퓨터 모니터로 봤을 때보다 실제로 감상했을 때 훨씬 더 긍정적인 반응이 많이 나오는 전시다. 전시는 오는 3월 2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