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에 파산하고 통닭집으로 재기한 사나이, 그는 KFC 할아버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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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넥스트미국 매사추세츠의 전화기 수리기사였던 크리스 도너번에게는 오랜 시간 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취미가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여성용 구두를 아주 섬세하게 스케치했다. 그의 디자인은 편하게 신는 신발보다는 건축 설계도에 가까웠다. 그는 직장 생활을 수십 년 하는 동안에도 그리기를 계속했다.
조앤 리프먼 지음
김성아 옮김
미래의창
408쪽
2만1000원
그는 50세가 되었을 때 전립선암을 진단받고 원치 않게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54세에 병이 완치된 후 그는 절박함 속에 이탈리아 디자인학교에 등록해 최고령학생이 됐다. 구두 디자이너로 새 출발을 시작한 것이다. 이후 그가 선보인 구두 디자인에 업계 사람들은 열광했고, 61세에 ‘패션계에서 가장 참신한 슈퍼스타’로 소개됐다. 그의 구두 브랜드 ‘크리스 도너번’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팬데믹은 우리 사회에 여러 변화를 일으켰지만, 그중에서도 중대한 변화는 직장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직장을 떠나고 경력을 바꾸는 일이 기록적인 수에 이르렀다. 적극적으로 회사 일에 몰두하지 않는 ‘조용한 퇴직’이라는 말도 생겼다. 직장은 물론이고 직업도 이젠 평생 직업도 찾을 수 없는 시대에 새로운 커리어를 찾고 도전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 사상 첫 여성 부편집장이었던 저널리스트 조앤 리프먼은 <더 넥스트>에서 실패를 극복하고 자신의 인생 2막을 여는 데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이들을 인터뷰하고 신경과학, 사회심리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이론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법칙을 제시한다. 이들은 인생의 다음 단계로 도약할 때 ‘탐색-분투-중단-해법’이라는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변화는 정보를 수집하는 ‘탐색’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에는 불편하고 절망적일 수 있는 ‘분투’로 접어든다. 그러다가 종종 휴식을 취하거나 강제로 ‘중단’당하는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마침내 국면 전환과 함께 ‘해법’이 도출되면 변화가 완수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50세 이후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다. 할랜드 데이비스 샌더스는 변호사 생활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 후 개업한 식당이 망했다. 65세에 파산하고 사회보장금과 연금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식당에서 그나마 잘 팔렸던 프라이드치킨 조리 비법으로 프랜차이즈 권리를 팔고 다녔다. 이 프랜차이즈는 KFC가 됐고 그의 얼굴을 이 회사의 마스코트가 됐다.
이 책에 실린 주인공들은 다양한 난관에 직면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했다. 수렁에 빠진 것처럼 바퀴가 헛도는 기분이 들 때도 정지한 게 아니라 탐색하며 전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변화는 반복적이고 계속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일에 마음을 열라고 조언한다. 다음 정착지는 자신이 계획한 곳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