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숨겨둔 보물찾기…할머니처럼 세상을 내려다보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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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현호의 바벨의 도서관‘세상의 모든 할머니는 요리·바느질·빨래를 아우르는 살림꾼일 것이다. 할머니는 이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어린 시절에는 유난히 이런 고정관념이 강했습니다. 진달래를 얹어 지져먹는 화전(花煎, 찹쌀 부꾸미에 봄꽃을 얹어 익힌 먹거리)부터 묵은 김치·두부로 만드는 손만두, 자투리 천으로 완성한 조각보에 이르기까지, 할머니의 위대한 유산이 어머니를 통해 계승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가질 법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의 말씀은 진리처럼 박혔고, 역사 속 위인의 어록보다 더욱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할머니의 언어는 평범하기만 한 일상 속에서 특히 위력을 발휘했는데,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나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처럼 연신 공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내려다보고 살어(살아)”라는 말이 후대의 가족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줬습니다. 이 문장에는 어쩌면 겸손함을 위한 당부·안분지족(安分知足)의 추구·이웃을 향한 사랑이 모두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려다보고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인데, 이제 어느덧 마음 속에 새겨진 듯합니다. 그런데 문득 할머니의 깊은 뜻을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여보고 싶어 졌습니다. 내려다보기. 소홀했던 사물과 풍경에 관심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소중한 하부공간
도시를 구성하는 수많은 구조물 중에는 의외로 버려지는 공간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다리 밑 공간은 특유의 어둠 또는 소음으로 인해 오랫동안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몇 해 전 건축가들이 도심 속 다리와 고가차도 하부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이를 통해 옥수역 고가차도 밑 ‘다락옥수(도서관과 벤치)’, 한남동 ‘한남1고가(카페와 벤치, 소공원)', 이문동 ‘루프스퀘어(벤치와 체육시설)’, 종암동 내부순환로 고가하부의 '종암 스퀘어(체육시설)’처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공간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멋진 장소로 거듭났습니다. 이 장소들은 도심 속에서 만나는 그 어떤 재생공간 보다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다리 밑은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근사한 곳입니다. 콘크리트 등 건축 재료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다리 밑은 브루탈리즘 건축(Brutalism architecture, 1950~1970년대에 유행했던 건축사조로 르코르뷔지에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내려다보면 다르게’ 보입니다.‘움푹 패인 장소’인 ‘성큰 스페이스(Sunken space)’역시 ‘아래’에 놓여있어 내려다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곳은 단지 내려다보는 것을 넘어 직접 내려가 산책하며 누릴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하는 미국 맨해튼의 록펠러센터 앞 로어플라자처럼 이제는 한국에도 근사한 성큰 공간이 많아졌습니다. 서울의 마곡중앙광장과 문정컬쳐밸리, 이화여대 정문의 ECC(이화캠퍼스복합단지), 광주에 위치한 아시아문화의전당 등이 누구에게나 개방된 대표적인 성큰 공간입니다.
등과 날개
우리가 도서관에서 책을 찾을 때, 세로로 꽂는 요즘 책도, 가로로 포개어 놓은 고서(古書)도 꺼내어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표지보다 옆면의 책등(책을 꿰매거나 접착시켜 엮은 부분)을 더욱 신경 써서 보게 됩니다. 그 책이 무선제본(페이퍼백, 소프트커버 등 접착제로 엮는 방식)이거나 양장본(하드커버, 딱딱하고 두꺼운 표지로 덮는 방식)이거나 상관없이 모두 책등을 바라봅니다. 책에 담긴 중요한 정보는 여전히 책등보다는 앞표지와 뒷표지에 표기되지만, 어느덧 소홀했던 책등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그래서인지 종이책의 디자이너들도 이 옆면에 굉장히 공을 들이기 시작한 듯합니다. 몇 해 전부터 노출식 사철 제본이 유행인 점도 같은 맥락이라고 해석됩니다. 무선제본과 양장본의 장점을 모두 갖춘 이 제본법은 책등을 덮는 대신 켜켜이 쌓인 종이의 두께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책등이 없으니 ‘종이’를 날 것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마치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색동무늬(멀티 스트라이프 패턴)처럼 멋진 디자인입니다. 주로 잡지에 채택하는 노출식 사철 제본법을 <아메토라: 일본은 어떻게 아메리칸 스타일을 구원했는가>라는 책을 통해서도 접한 적이 있습니다. 제목에서 드러냈듯이 이 책은 재킷처럼 ‘가장 미국적인 의복’을 일본이 차용하면서 현대식 복식문화의 한 축으로 만들어냈다는 내용을 패션 다큐멘터리처럼 엮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편집자가 선택한 제본법은 그 내용과 조화롭고 멋스럽습니다. 책등만큼이나 신경 써서 보지 않는 곳이 있다면 바로 책날개일 것입니다. 책의 앞표지와 뒷표지를 감싸 안은 안쪽면은 ‘책날개’라고 부르는데, 이 부분의 디자인도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책날개에는 단순히 작가를 소개하는 글뿐만 아니라 핵심 문장, 추천사 등이 담깁니다. 때로는 해당 작가의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책이 언급되거나, 같은 출판사의 주옥 같은 책이 소개되는데 꼭 유튜브의 알고리즘처럼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많습니다. 책을 펼쳐보기 전까지는 날개의 매력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마치 소맷단이나 앞섶에 적·백·청색 줄무늬를 넣은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톰 브라운이 만든 의류 같습니다.
발바닥에 뭐가 붙었나 보세요
먼 기억을 떠올려보니, 1980~1990년대의 도심 거리의 바닥석에는 쿠사마 야요이의 땡땡이 무늬처럼 검은 반점이 많았습니다. 다름 아닌 거리에 뱉은 껌이 달라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 시대를 ‘야만의 시대’라고 폄훼하기는 어렵고, 오늘날과 비교해 껌을 씹는 사람이 더욱 많았던 것으로 추정할 따름입니다. 발바닥을 살필 때, 과거엔 ‘씹던 껌’을 발견할 확률이 높았지만, 요즘엔 신발 밑창의 개성 있는 무늬에 감탄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신발의 밑창은 산업의 고도 성장기를 지나며 디자인의 경연장이자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고히 드러내는 수단으로 거듭났습니다. 구두 수선점에서 신발장인들이 덧대어 주는 겉창(아웃솔)의 무늬도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점점 미끄럼 방지를 넘어 아름다움까지 갖춰갑니다.
신발의 밑창 가운데, 그 전문성과 역사를 바탕으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비브람(Vibram)’입니다. 이 신발 밑창은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와 협업을 할 정도로 해당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비브람의 창업자인 이탈리아의 비탈레 브라마니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신발 밑창에 공을 들여 그 자체로 정체성을 갖춘 브랜드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니 굉장한 일입니다. 겉창과 안창으로 이뤄진 신발의 밑창을 건축물처럼 입체적으로 설계하는 운동화도 많아졌습니다. 나이키가 일본의 패션 브랜드 디자이너 아베 치토세와 힘을 모아 선보인 ‘사카이 베이퍼와플’이라는 운동화가 있습니다. 운동화의 겉창과 안창이 마치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신발의 밑창이 살아서 혀를 날름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운동화는 해체주의(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주창한 문화 사조로, 건축을 이루는 형태, 구조 등을 잘게 분해한 후 새롭게 조합하거나 비선형적인 요소, 기하학적 요소를 접목시킨 점이 특징입니다) 건축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카이 베이퍼와플 운동화를 신고 걷는 사람을 보면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이나 리차드 로저스·렌조피아노 설계의 퐁피두센터가 통째로 움직이는 듯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그저 신발 밑창일 뿐인데 말입니다. 비록 앞으로도 이런 멋쟁이들의 신발을 착용할 기회는 없겠지만, 그 발자국이 도시에 다양한 풍경을 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