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떠나는 여자 선수들 붙잡으려면…희망 주고 시야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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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로 돌아온 여자축구 지도자 "한국만큼 대우해주는 곳 없지만…"
손흥민과 독일 갔던 지도자 "지금 같은 현실서 딸 축구시킬 부모 있겠나" "요즘 선수들이 그만두고 뭘 제일 많이 하는지 아세요? 캐디예요. 계속 축구 쪽에 있도록 해야죠."
김성희 이결스포츠에이전시 대표는 10년간 충북 예성여고와 충남인터넷고 여자축구부 등에서 지도자로 일했다.
그가 고교 선수의 삶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석사논문을 쓴 게 2022년이다.
그라운드 밖에서 만난 학생들은 여자축구 선수로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했다. 인기가 저조하고 저변이 좁은 현실이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주는 상황을 직접 지켜본 그는 지도자를 그만뒀다.
대신 사업가로 여자축구판에 돌아왔다.
유럽 대표 체육대학으로 알려진 독일 쾰른체대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공부한 이겨레 대표와 지난해 8월 여자 선수 육성을 전담하는 회사를 차렸다. 우리나라에서 여자축구로만 폭을 좁혀 유망주 발굴, 선수 육성 등에 집중하는 매니지먼트사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지난해 9월 부산 동명공고 여자축구부 창단을 이끈 김 대표는 15세 이하(U-15), 12세 이하(U-12) 엘리트 팀을 연내 출범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 연령대를 묶는 효율적 시스템을 꾸리겠다는 의도에서다. 10년 전인 2014년(1천765명)보다 전문 선수로 등록된 인원이 15%가량 줄어 2023년에는 1천500명대(1천570명)에 머무는 현실을 생각하면 반가운 시도다.
김 대표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돈이 안 되는 사업'을 시작해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여자 선수들이 은퇴 이후에도 축구와 관련된 직업을 기꺼이 선택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연령별 대표 선수 출신 김 대표가 보기에 의식주가 제공되는 현 운동부·실업팀 체제에서 여성 축구인으로 성공하고픈 동기를 얻기 힘들다.
그래서 돈이나 인지도를 얻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축구인으로서 길을 포기하고 캐디로 전업하는 경우가 잦다.
캐디로서 필요한 체력, 정신력을 선수 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길러온 터라 적응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한다.
하지만 캐디는 골프 산업의 전문 직종이다.
축구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종목 생태계 밖으로 인력이 순유출된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은퇴 선수 중 어느 정도 비율이 캐디로 이직하는지 공식 기록으로 파악된 바 없다.
다만 김 대표 등 관계자들은 상당수 지인이 그라운드를 영원히 떠나 캐디로 일한다고 증언한다.
여성으로만 강사진을 꾸려 은퇴한 선수를 자주 접한다는 세계로풋볼클럽의 강수지 대표 역시 "지인인 은퇴 선수 중 30%는 캐디로 간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대표로 수십 경기를 뛴 선수 중에서도 축구인이 아니라 캐디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는 걸로 알려진다.
김 대표는 이탈을 막으려면 여자 선수들도 '축구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축구 산업과 관련해 각종 경험을 쌓아 지도자뿐 아니라 행정가 등 다양한 직종을 꿈꾸는 남자 선수들과 다르게 여자 선수들에게는 '좁은 시야'가 강제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 대표는 여자 선수들도 현 체제 밖의 세상을 접할 수 있도록 해외 진출이 장려돼야 한다고 짚었다.
실제로 에이전시 소속 부산세연고 출신 골키퍼 강수희와 부산정보고 출신 수비수 임현선이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소속 팀 입단을 앞두고 있다. 지소연(시애틀), 조소현(버밍엄 시티) 등 우리나라 최고 기량을 자랑하는 간판급 선수 일부만 해외에서 안정적 경력을 쌓았다.
그 정도 기량이 없다면 해외 생활은 가시밭길이다.
'해외에서 성공 가능성'을 묻자 김 대표는 유소녀·성인을 망라한 선수들도 어려운 도전을 견딜 각오로 본격적 준비에 나설 때라고 답했다.
그는 "실업팀까지만 가면 우리나라만큼 선수를 잘 대우해주는 곳이 세계에서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고생 없이는 한국 여자축구의 성장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 오주중학교 여자축구부의 '마지막 지도자' 김종건 전 감독도 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해외 진출이 장려돼야 한다는 제언에 동의했다.
오주중은 여자축구 간판 지소연의 모교다.
한때 최고 명문으로 꼽혔던 오주중 여자축구부는 교육 당국의 합숙 폐지 정책 탓에 선수 수급이 어려워져 2022년을 끝으로 사라졌다.
남자축구는 운동부를 둔 학교가 많아 기숙사 생활 없이 뛸 팀을 찾기 쉽다.
운동부 한 곳을 찾기 힘든 여자축구는 합숙이 금지되면 통학 부담이 커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렵다.
김 전 감독은 "제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캐디를 하는 친구가 많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딸에게 축구를 시키려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나"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합숙 금지 등 유소녀 축구의 현안을 해결하고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손흥민(토트넘)이 한국 축구를 책임지는 간판이자 꿈나무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크는 과정을 봤기 때문이다.
협회 전임 지도자 시절인 2008년 '우수 선수 해외 유학' 프로젝트로 손흥민 등과 함께 독일 함부르크로 떠난 김 전 감독은 "물론 해외에 간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손흥민처럼 어떻게든 발전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여자축구부에서 활동한 지소연의 모교 운동부 중 생존한 곳은 서울 동산고뿐이다.
한양여대 여자축구부도 재정난 탓에 2019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동산고마저도 지난해에는 선수가 14명뿐이었다.
서너 명이 다치면 경기 자체가 어려웠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좁은 저변 속 고전하는 한국 여자축구의 현실을 안다고 한다.
FIFA의 산지반 발라싱암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디렉터는 연합뉴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여자축구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다"며 "특히 등록 선수가 적다.
아시아 지역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여자축구 행정에 대한 구체적 평가는 삼갔다.
대신 여러 협회가 각자 상황에 맞는 다양한 진흥책을 내놓고 있다며 특히 필리핀과 베트남이 여자축구 발전을 꾀해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고 짚었다.
두 팀은 지난해 열린 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을 통해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다.
202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에서는 각각 4강, 8강까지 올랐다.
발라싱암 디렉터는 "남자축구와 시장 규모의 격차가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대회 상금을 키우고, 발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재정 지원을 늘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자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개인·사회의 역량 강화, 성평등 차원에서 중요하다. 그게 여자축구 진흥을 위해 우리가 애쓰는 이유"라고 전했다. /연합뉴스
손흥민과 독일 갔던 지도자 "지금 같은 현실서 딸 축구시킬 부모 있겠나" "요즘 선수들이 그만두고 뭘 제일 많이 하는지 아세요? 캐디예요. 계속 축구 쪽에 있도록 해야죠."
김성희 이결스포츠에이전시 대표는 10년간 충북 예성여고와 충남인터넷고 여자축구부 등에서 지도자로 일했다.
그가 고교 선수의 삶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석사논문을 쓴 게 2022년이다.
그라운드 밖에서 만난 학생들은 여자축구 선수로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했다. 인기가 저조하고 저변이 좁은 현실이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주는 상황을 직접 지켜본 그는 지도자를 그만뒀다.
대신 사업가로 여자축구판에 돌아왔다.
유럽 대표 체육대학으로 알려진 독일 쾰른체대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공부한 이겨레 대표와 지난해 8월 여자 선수 육성을 전담하는 회사를 차렸다. 우리나라에서 여자축구로만 폭을 좁혀 유망주 발굴, 선수 육성 등에 집중하는 매니지먼트사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지난해 9월 부산 동명공고 여자축구부 창단을 이끈 김 대표는 15세 이하(U-15), 12세 이하(U-12) 엘리트 팀을 연내 출범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 연령대를 묶는 효율적 시스템을 꾸리겠다는 의도에서다. 10년 전인 2014년(1천765명)보다 전문 선수로 등록된 인원이 15%가량 줄어 2023년에는 1천500명대(1천570명)에 머무는 현실을 생각하면 반가운 시도다.
김 대표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돈이 안 되는 사업'을 시작해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여자 선수들이 은퇴 이후에도 축구와 관련된 직업을 기꺼이 선택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연령별 대표 선수 출신 김 대표가 보기에 의식주가 제공되는 현 운동부·실업팀 체제에서 여성 축구인으로 성공하고픈 동기를 얻기 힘들다.
그래서 돈이나 인지도를 얻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축구인으로서 길을 포기하고 캐디로 전업하는 경우가 잦다.
캐디로서 필요한 체력, 정신력을 선수 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길러온 터라 적응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한다.
하지만 캐디는 골프 산업의 전문 직종이다.
축구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종목 생태계 밖으로 인력이 순유출된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은퇴 선수 중 어느 정도 비율이 캐디로 이직하는지 공식 기록으로 파악된 바 없다.
다만 김 대표 등 관계자들은 상당수 지인이 그라운드를 영원히 떠나 캐디로 일한다고 증언한다.
여성으로만 강사진을 꾸려 은퇴한 선수를 자주 접한다는 세계로풋볼클럽의 강수지 대표 역시 "지인인 은퇴 선수 중 30%는 캐디로 간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대표로 수십 경기를 뛴 선수 중에서도 축구인이 아니라 캐디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는 걸로 알려진다.
김 대표는 이탈을 막으려면 여자 선수들도 '축구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축구 산업과 관련해 각종 경험을 쌓아 지도자뿐 아니라 행정가 등 다양한 직종을 꿈꾸는 남자 선수들과 다르게 여자 선수들에게는 '좁은 시야'가 강제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 대표는 여자 선수들도 현 체제 밖의 세상을 접할 수 있도록 해외 진출이 장려돼야 한다고 짚었다.
실제로 에이전시 소속 부산세연고 출신 골키퍼 강수희와 부산정보고 출신 수비수 임현선이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소속 팀 입단을 앞두고 있다. 지소연(시애틀), 조소현(버밍엄 시티) 등 우리나라 최고 기량을 자랑하는 간판급 선수 일부만 해외에서 안정적 경력을 쌓았다.
그 정도 기량이 없다면 해외 생활은 가시밭길이다.
'해외에서 성공 가능성'을 묻자 김 대표는 유소녀·성인을 망라한 선수들도 어려운 도전을 견딜 각오로 본격적 준비에 나설 때라고 답했다.
그는 "실업팀까지만 가면 우리나라만큼 선수를 잘 대우해주는 곳이 세계에서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고생 없이는 한국 여자축구의 성장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 오주중학교 여자축구부의 '마지막 지도자' 김종건 전 감독도 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해외 진출이 장려돼야 한다는 제언에 동의했다.
오주중은 여자축구 간판 지소연의 모교다.
한때 최고 명문으로 꼽혔던 오주중 여자축구부는 교육 당국의 합숙 폐지 정책 탓에 선수 수급이 어려워져 2022년을 끝으로 사라졌다.
남자축구는 운동부를 둔 학교가 많아 기숙사 생활 없이 뛸 팀을 찾기 쉽다.
운동부 한 곳을 찾기 힘든 여자축구는 합숙이 금지되면 통학 부담이 커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렵다.
김 전 감독은 "제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캐디를 하는 친구가 많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딸에게 축구를 시키려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나"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합숙 금지 등 유소녀 축구의 현안을 해결하고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손흥민(토트넘)이 한국 축구를 책임지는 간판이자 꿈나무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크는 과정을 봤기 때문이다.
협회 전임 지도자 시절인 2008년 '우수 선수 해외 유학' 프로젝트로 손흥민 등과 함께 독일 함부르크로 떠난 김 전 감독은 "물론 해외에 간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손흥민처럼 어떻게든 발전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여자축구부에서 활동한 지소연의 모교 운동부 중 생존한 곳은 서울 동산고뿐이다.
한양여대 여자축구부도 재정난 탓에 2019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동산고마저도 지난해에는 선수가 14명뿐이었다.
서너 명이 다치면 경기 자체가 어려웠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좁은 저변 속 고전하는 한국 여자축구의 현실을 안다고 한다.
FIFA의 산지반 발라싱암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디렉터는 연합뉴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여자축구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다"며 "특히 등록 선수가 적다.
아시아 지역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여자축구 행정에 대한 구체적 평가는 삼갔다.
대신 여러 협회가 각자 상황에 맞는 다양한 진흥책을 내놓고 있다며 특히 필리핀과 베트남이 여자축구 발전을 꾀해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고 짚었다.
두 팀은 지난해 열린 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을 통해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다.
202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에서는 각각 4강, 8강까지 올랐다.
발라싱암 디렉터는 "남자축구와 시장 규모의 격차가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대회 상금을 키우고, 발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재정 지원을 늘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자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개인·사회의 역량 강화, 성평등 차원에서 중요하다. 그게 여자축구 진흥을 위해 우리가 애쓰는 이유"라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