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건설사판 쏘나타와 그랜저"…아파트, 화려해지는 이유 [집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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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인플레이션
▶전형진 기자
제가 어린 시절 그랜저는 입신양명, 출세의 상징 같은 차였습니다. 하지만 이젠 대중적인 차가 돼버렸죠. 과거의 쏘나타와 같은 위치가 된 것입니다. 지금의 제네시스 G80이 과거의 그랜저와 같은 위상인 것이고요.

갑자기 웬 자동차 애기냐 싶겠지만 어딘지 낯익습니다. 우리가 요즘 부동산시장에서 보고 있는 일이죠. 과거엔 e편한세상, 푸르지오,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참 많았지만 요즘 재개발·재건축 수주전을 보면 어떤가요. 서울 웬만한 지역의 경우 건설사들이 이 같은 브랜드로 제안하지 않습니다. 아크로, 써밋, 디에이치라는 브랜드를 내세우고 있죠.

그런데 건설사들이 강남에서만 영업을 하는 건 아니죠. 전국에서 수주를 해야 합니다. 문제는 원청인 조합들의 눈이 이미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강남이 아닌 지역들에서도 고급 브랜드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이제 건설사들은 수도권 도시나 지방 광역시에서 수주할 때도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해주겠다고 제안하게 됩니다. 그래야 사업을 따고, 따야 돈을 버니까요.

하이엔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때 타이밍이 조금 안 맞은 조합은 어떻게 나올까요. 이미 일반 브랜드로 짓기로 했단 말이죠. 이럴 땐 착공을 코앞에 두고 설계를 다 뜯어 고치긴 힘드니 마감적인 부분만 하이엔드급으로 올립니다. 단지명에 하이엔드 브랜드가 들어갔지만 실제 설계에선 특화 부분이 거의 반영되지 못한 것이죠. 서울 도처에도 이 같은 단지들이 종종 있습니다.
자동차가 사람의 신분을 말해주는 게 아닌 것처럼 아파트 브랜드가 그 집의 가치를 말해주는 건 아닙니다. 주택시장마저도 외연의 과시에 집착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이재형·이문규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예수아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