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문 닫으면 지역도 소멸…특색있는 작은 학교로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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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한국에 대학이 많다고요? 인구수를 고려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 문을 닫는 대신 특색있는 소규모 학교로 키워야 합니다.”
위기의 대학…김도연 前 교과부 장관에게 듣는다
大入인구 한국과 비슷한 일본
대학수 2배지만 소규모 학교 많아
일단 무조건 자금 지원 이후
돈 제대로 안 썼으면 강력 처벌
교수들은 기득권 내려놓아야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고?
서울에도 벚꽃 핀다는 것 명심을
25일 서울 부암동 태재미래전략연구원에서 만난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인구비로 따지면 미국이 우리보다 대학이 더 많고, 일본은 비슷한 수준”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김 장관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초대 위원장, 울산대 총장, 포스텍 총장 등으로 일한 교육 전문가다. 현재는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대학의 위기는 결국 지역, 국가의 위기로 번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방대를 살리는 것이 지방 소멸을 막는 길이라며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은 “지금 지원을 시작해도 100개 이상의 대학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지원할 대학을 선별할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숫자를 줄이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전 세계 대학 2만5000여 개 중 미국과 일본이 각각 3500개, 750개인데 한국은 350개에 불과합니다. 일본의 대학 입학 인구가 매년 50만~60만 명으로 한국과 비슷한데 대학 수는 두 배 이상 많습니다. 문제는 규모입니다. 한국은 거의 모든 대학이 5000명 이상의 종합대학 수준입니다. 이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합니다. 일본은 750개 대학 중 250개는 1000명 이하의 소규모 대학입니다. 한국 대학들도 특색있는 학교로 강소화해야 합니다.”
▷경쟁력 없는 대학은 문을 닫아야 하지 않을까요.“지역대학이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젊은이가 모두 사라지며 지역은 생기를 잃고 급속히 소멸의 길로 들어갈 것입니다. 지방대 문을 닫는 방식의 구조조정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오히려 지역 대학을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요.
“대학에 정부 지원이 늘어나야 합니다. 세계에서 한국만큼 대학교육을 ‘싸구려’로 만든 곳이 없습니다. 지역 대학 중에는 학생 1인당 교육비가 1500만원도 안 되는 곳이 많습니다.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 머리뿐만 아니라 허리가 중요합니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지역대학인데 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등록금 인상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학이 많습니다. 현재 초·중등 교육에만 사용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대학이 함께 쓰는 형태로 바꿔 꾸준히, 충분히 지원해야 합니다.”▷옥석을 고르지 말고 모두 지원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지금은 무조건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국 대학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습니다. 지금부터는 적극적인 지원을 해도 사라질 대학이 너무 많습니다. 일단 선 지원한 후 지원금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면 강력히 처벌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합니다. 사실 지금은 예전처럼 정부지원금을 재단이 가져가거나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대학은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만큼 더욱 엄벌하면 됩니다.”
▷대학 지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재정 투입이나 등록금 인상에 대해 사회가 부정적인 것은 그간 대학이 지닌 기득권 때문입니다. 특히 교수들의 기득권이 문제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테뉴어(정년보장제도)죠. 미국 조지아 주정부는 이미 28개 모든 공립대의 교수정년보장을 폐지하고 정년보장을 받은 6000명의 교수 기득권도 인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와 함께 교수업적 평가에 학생이 성공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반영하기로 했고요. 교수들이 정년보장과 관계없이 쉬지 않고 교육과 연구에 노력해야 대학이 경쟁력을 갖춘다는 취지입니다. 한국은 교수가 돼서 시간만 지나면 테뉴어를 받는데, 그렇게 정년까지 일하는 방식은 바뀌어야 합니다. 대학이 기득권을 버리지 않아서 사회가 대학을 버렸습니다. 지금이라도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문을 닫고 싶어도 못 닫는 대학도 있습니다.
“퇴로를 열어줘야 합니다. 사립학교구조조정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등이 사학법인이 남은 재산을 공익법인 등으로 넘길 때 잔여 재산 일부(30%)를 지급하는 조항에 반대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100점짜리 정책을 찾으려다 아무것도 못 해 빵점이 될 상황입니다. 70점짜리 정책이라도 택해야 합니다. 지금 문을 닫지 못하고 그냥 유지하는 대학들에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학생, 직원 등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도권 대학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수도권 대학 정원을 줄여야 합니다. 대표적 연구형 대학인 하버드와 서울대를 비교하면 서울대 학부생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수도권 대학이 정원을 감축해야 지방에서 올라오는 학생이 줄어들어 지방대가 숨통이 트일 것입니다.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망한다지만 서울에도 벚꽃이 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역 대학이 쇠하면 수도권 대학도 쇠할 수밖에 없습니다.”
■ 김도연 전 장관 약력△1952년 서울 출생
△1974년 서울대 재료공학과 졸업
△1976년 카이스트 대학원 석사
△1979년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 공학 박사
△1979년 아주대 공과대 조교수
△1982년 서울대 공과대 교수
△2005년 서울대 공대 학장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2008년 울산대 총장
△201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2015년 포스텍 총장
△2020년~ 울산공업학원 이사장
△2023년~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