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디아'도 질투할 엔비디아…어떻게 'AI시대 제왕'이 됐나

DEEP INSIGHT

AI 슈퍼스타 엔비디아, 그 힘은

게임 그래픽카드 만들어
GPU시장 90% 넘게 독점
AI 학습에 최적화 평가
AI가속기 'H100' 품귀
"마약보다 구하기 힘들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의 회사 이름은 라틴어 ‘인비디아’(invidia)'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질투의 여신’ 이름, 맞다. “모든 사람이 질투할 만한 멋진 회사를 만들자”는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등 창업자 3인방의 포부를 사명에 담았다. 꿈은 현실이 됐다. 지난 23일 뉴욕증시에서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2조달러(약 2660조원)를 돌파한 것. 지난해 매출(609억달러·81조원)과 영업이익(329억달러·43조원)이 1년 전보다 무려 126%와 311%나 증가한 덕분이다. 엔비디아는 시가총액에서 구글과 아마존을 누르고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지난해 6월 시총 1조달러를 넘어선 지 8개월 만에 만들어낸 결과다.

역사상 이렇게 빠른 속도로 ‘몸값’을 불린 기업은 없었다. 애플과 MS도 시가총액을 1조달러에서 2조달러로 불리는 데 2년 가까이 걸렸으니…. 시장은 묻는다. ‘엔비다아 천하’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

AI반도체 회사로 변신한 그래픽카드 업체

엔비디아는 오랫동안 게이머들만 아는 회사였다. 엔비디아의 출발점이 바로 3차원(3D) 그래픽카드 칩이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만든 ‘지포스’ 시리즈는 성능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가성비 칩’으로 불렸다. 창업자 3인방이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의기투합한 1993년 당시 반도체는 ‘인텔 세상’이었다. 컴퓨터의 성능을 가르는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 인텔을 넘볼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신생 업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건 틈새시장뿐이었다. 당시 이렇다 할 ‘주인’이 없던 3차원 그래픽카드 시장을 젠슨 황이 진출 대상으로 삼은 이유다. 게임을 좋아한 창업자들은 그래픽카드 시장의 성장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의 미래를 읽는 것과 시장 판도를 바꿀 제품을 만들어내는 건 다른 영역이었다. 제품 생산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첫 작품이 설립 6년 만인 1999년에나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게 탄생한 지포스는 단숨에 게임용 그래픽카드 시장을 평정했다.그래픽카드를 만들던 엔비디아가 ‘AI 황태자’로 등극한 건 몇 년 전이다.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가 AI 서비스를 펼치는 데 가장 적합한 덕분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픽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GPU의 구조가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AI 학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1년 전 오픈AI가 내놓은 생성형 AI ‘챗GPT’는 엔비디아의 GPU 품귀 현상에 불을 붙였다. 챗GPT의 놀라운 성능 뒤에 엔비디아의 AI가속기 ‘서버용 H100’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구글 MS 등 글로벌 빅테크가 생성 AI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H100은 세계적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어서다. 엔비디아의 AI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그러다 보니 H100은 4000만원이 훌쩍 넘지만 없어서 못 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마약보다 구하기 어렵다”고 한 건 빈말이 아니다. 엔비디아가 지난해 영업이익률 66%를 올린 비밀이 여기에 담겨 있다.

이는 실적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AI 서비스용 서버·데이터센터 사업을 하는 데이터센터 부문이 주력 사업이 된 건 2022년 1분기부터다.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은 2022년 1분기 37억달러로 게이밍 부문(36억달러) 실적을 처음으로 추월한 데 이어 지난해 3분기엔 145억달러를 달성했다. 6개 분기 만에 4배로 늘어났다.

소프트웨어 ‘쿠다’ 개발은 신의 한 수

엔비디아의 폭발적인 성장은 AI 시대 도래에 따른 우연일까. 젠슨 황은 게임용 그래픽카드 개발 과정에서 GPU의 잠재적인 다양한 쓰임새를 일찌감치 내다봤다. 매우 많은 픽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GPU 구조가 기상예측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젠슨 황은 곧바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었다. 2006년 100억달러를 투입해 ‘쿠다’를 선보였다. 쿠다는 GPU가 게임용 외에도 다른 작업에 쓰일 수 있도록 작업의 연산 속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신의 한 수’는 엔비디아 칩에서만 작동하는 쿠다를 모든 이에게 무료로 배포한 것. 이런 전략은 AI 시대와 맞물려 제대로 먹혀들었다. AI를 개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쿠다가 필수 소프트웨어로 자리잡으면서다. 쿠다를 쓰려고 엔비디아 칩을 사는 메커니즘을 만든 것이다.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다각화도 성장에 한몫했다. 2019년 컴퓨터 네트워킹 공급업체 멜라녹스를 인수하며 데이터센터용 사업에 뛰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멜라녹스의 고성능 네트워킹 기술을 확보해 AI컴퓨팅에서 데이터센터를 발전시킬 수 있게 됐다. 이 밖에 3D 그래픽 기술을 선도했던 3sfx(2022년), 미디어Q 아이레디(2004년), ULI(2005년) 등을 사들였다. 이를 통해 엔비디아는 GPU-AI가속기-쿠다로 이어지는 플랫폼을 구축해 고객사를 묶어둘 수 있었다.반도체 칩 설계와 제조가 분업화된 환경도 엔비디아에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인텔처럼 칩 개발부터 제조까지 한 기업이 모두 하는 구조에서 1990년대 들어 반도체 주력 사업의 분업화가 시작된 것이다. 엔비디아 칩은 대부분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TSMC가 생산한다.

“당분간 독주체제 계속될 듯”

시장의 관심은 엔비디아 독주체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쏠려 있다. 경쟁사 AMD와 인텔이 자체 AI칩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 구축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어서다. 엔비디아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오픈AI, 구글, 아마존, 메타, MS 등의 ‘탈(脫)엔비디아’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들은 엔비디아 칩이 비쌀 뿐만 아니라 범용 제품이라 자사의 AI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향후 ‘큰손’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업계에선 당분간 ‘엔비디아 천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최소 2년은 지금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AMD 등 경쟁사들의 제품이 나오겠지만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비디아도 발 빠르게 ‘장기 집권’ 채비를 갖추고 있다. 빅테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맞춤형 칩’을 만들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차세대 AI칩 ‘HGX H200’도 하반기 출시한다. 자율주행 기술, 신약 개발 플랫폼 등 AI를 활용한 신사업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가죽재킷 CEO 젝슨 황…30세 생일에 엔비디아 창업
GPU 단어 최초로 만들어…세계 20대 갑부 진입 눈앞

“젠슨 황과 그의 블랙 가죽점퍼가 인공지능(AI)의 상징이다.”

뉴욕타임스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61)를 이렇게 표현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블랙 가죽점퍼를 입은 젠슨 황이 입을 열 때마다 엔비디아 주가가 춤을 춘 걸 빗댄 것이다.

젠슨 황은 대만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대만계 미국인이다. 오리건주립대(전기공학 학사)와 스탠퍼드대(전기공학 석사)를 나와 엔비디아의 경쟁사인 AMD에서 중앙처리장치(CPU) 설계 업무를 배웠다. 1993년 자신의 30번째 생일에 엔비디아를 공동 창업했다. 1999년 게임용 그래픽 카드 ‘지포스’를 출시하면서 그래픽처리장치(GPU)란 이름을 붙였다. GPU의 컴퓨팅 기술 능력이 세상에서 통할 것이란 강력한 믿음 때문이었다.

엔지니어 출신인 젠슨 황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시장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카리스마형 리더’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불도저식 경영 스타일은 아니다. 성과에 대해 확실하게 보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직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며 소통도 중요하게 여긴다. 잘못된 판단에 대해선 즉각 수용하는 면모도 갖췄다고 한다. 2008년 야심차게 출시한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테그라’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시장에서 철수한 게 대표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낮추면서도 인재 영입에 나설 정도로 ‘똑똑한 사람’을 챙긴다.

올해 61세로 적지 않은 나이에 현장을 활발히 누비는 것도 젠슨 황의 특징이다. 젠슨 황은 지난해 은퇴 시점을 묻는 질문에 “앞으로 30~40년 정도 회사를 더 이끌고 싶다”고 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나 중국의 알리바바를 이끈 마윈 회장 등이 50대에 은퇴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의 팔에는 주가가 100달러를 처음 돌파했을 때 새긴 엔비디아 문신이 있다.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주가 폭등으로 자산 가치가 681억달러(약 90조5000억원)로 증가해 ‘세계 20대 부호’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젠슨 황이 보유한 회사 지분은 3.51%다.

김채연/최예린/박의명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