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부동산 위기도 못말리는 美 '투자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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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뉴욕특파원“위워크, 메타, 구글 등 대기업들이 뉴욕에서 임차해 쓰던 사무실을 재임대 시장에 내놓고 있습니다. 이들이 물량을 밀어내니 임대료가 더욱 떨어지고, 상업용 부동산 가격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만난 마크 노먼 미국 뉴욕주립대 산하 셱부동산 연구소장이 말한 뉴욕 맨해튼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 모습이다. 그는 뉴욕시의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이 최근 19%에 달한다고 전했다.
가격 떨어지는 美 오피스빌딩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이 높은 것은 재택근무 확산과 금리 급등이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 문화가 퍼지면서 오피스 수요가 줄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건물주의 이자 부담도 늘었다. 임대료 수익은 감소한 반면 이자 부담이 커지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뉴욕 지역은행인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가 최근 신용평가사들로부터 투자 부적격 등급을 받으며 주가가 반토막 난 것도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 때문이다.오피스빌딩 가격도 내려가고 있다. Fed가 본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기 전인 2021년 4분기 뉴욕 맨해튼 오피스빌딩의 중위값은 제곱피트당 1029달러에서 지난해 4분기 774달러까지 내렸다.
가격 하락은 대출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연체율이 지난해 11월 2.25%에서 올해 4.5%, 2025년 4.9%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부동산 시장 조사업체 애톰에 따르면 미국의 1월 상업용 부동산 압류 건수는 63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97% 증가했다.뉴욕시는 주택난과 상업용 부동산 공실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일부 오피스빌딩을 주거용으로 전환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인건비와 자재비가 급등한 탓이다. 노먼 소장은 “오피스 빌딩을 주거용으로 바꾸려면 가구당 필요한 화장실과 부엌을 위한 배수로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건물주 입장에선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를 기회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피스빌딩 가격이 2년 전보다 20~30% 떨어지면서 저가 매수에 나선 개인과 기업이 적지 않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프라다는 뉴욕 5번가에 있는 건물을 지난해 말 4억2500만달러에 매입했다. 1997년부터 이곳 5층짜리 매장을 임차해 온 프라다는 현금으로 대금을 지급했다.
위기 속 기회 잡는 사람들
임대 시장에서 고급 오피스빌딩 또한 상업용 부동산 부실 문제에서 비켜나 있다. 맨해튼의 경우 허드슨 야드에 있는 고급 오피스빌딩 공실이 거의 없다. 최근 웰스파고은행은 허드슨 야드에서 약 2만8000㎡의 사무 공간을 더 임차한다고 발표했다.이 같은 소문을 들은 뉴욕 맨해튼의 건물주들은 최근 오히려 돈을 더 들여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고 외장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대다수 사람이 상업용 부동산을 미국 경제의 부실 뇌관이라고 우려하며 경계하는 상황을 누군가는 투자의 호기로 삼고 있는 것이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미국 경제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쩌면 지금의 미국 증시 호황도 이런 투자 본능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