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의대 증원으로 의료 재정이 붕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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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의료 재정 증가를 주요 이유로 들고 있다. 최근 의협 관계자는 의사 증가는 곧 진료비 증가라며 의사가 늘어나면 의료 수요도 함께 늘어나 건강보험 등 의료 관련 재정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의협은 2008년 건강보험공단이 수행한 연구 보고서를 그 근거로 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비교해 보니 인구당 의사 수가 10% 늘 때 1인당 의료비가 22% 증가했다는 내용이다. 흥미롭게도 필자는 비슷한 결과의 해외 연구를 꽤 찾을 수 있었다. 대부분 연구에서는 가격을 통제했으니 결국 의사 수가 증가하면서 의료 이용이 더 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과연 의협의 주장은 얼마나 일리가 있을까.의협의 주장을 듣고 미충족 의료의 해소가 바로 떠올랐다. 미충족 의료는 병원에 갈 필요가 있지만 가까운 곳에 병원이 없거나 대기가 길어 제때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요즘 문제가 되는 ‘소아과 오픈런’과 같은 상황은 미충족 의료의 존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고자 하는 주요 목적은 이런 미충족 의료의 해소다. 그 결과로 진료비가 증가한다면 당연히 추진해야 할 정책이다. 의협도 이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의사 수 증가가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늘린다면, 의료 재정이 붕괴할 수 있다는 의협의 주장은 타당할 수 있다. 1960년대 미국 지역을 비교 분석한 유명한 연구에 따르면 인구 대비 외과 의사 수가 10% 증가하면 주민 1인당 수술량이 3% 증가했다고 한다.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통제했고, 더구나 외과수술이라 미충족 의료 해소로 보기 어려운 결과다. 대신 저자는 의사 간 경쟁이 높아지면서 줄어든 소득을 보상하기 위해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행위를 ‘유인 수요’라고 한다. 의사가 전문지식을 활용, 환자를 설득해 필요 이상의 진료와 검사를 받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의사가 제공하는 개개의 진료행위별로 가격을 책정해 진료비를 지급할 때 유인 수요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2008년 건강보험공단 보고서에서 주목할 것은 한국과 같은 행위별 수가 체계 아래에서는 의사가 많아질수록 이런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위 보고서를 근거로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의료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진료비 지급 제도와 본인부담률 등을 개선해 합리적인 의료 이용을 유도할 때 가능하다. 이번 의료 개혁에서는 의대 증원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의료 이용 개선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의사 수를 늘려서 의료 재정이 붕괴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