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기치 못한 충격에 쉽게 부서져 그래서 친구가 필요하겠지

[arte] 소심이의 참견
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친구
1992년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만 하면 당시 인기있던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과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도 생길 것이라 굳게 믿으며 시작한 대학생활. 하지만 우리는 ‘방 클럽’을 결성해 오후 수업이 없는 목요일에는 당시 등장과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방을 전전했고, 비싼 등록금에 저항하는 ‘등투(등록금 투쟁)’에 참여하고,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우리들의 천국’과는 전혀 다른 ‘우리들만의 천국’에 만족하며 4년을 보냈다. 함께 나란히 졸업했고, 누군가는 대학원으로 누군가는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누군가는 미생의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함께 ‘새내기’라는 이름으로 대학에 입학 한지도 30년이 지났다.
이제는 서로 자기 흰머리가 더 많고,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30년지기. 그녀들과 모처럼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기차에서, 배에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숙소에서도 밤새는 줄 모르고 화수분처럼 끝없이 이야기가 솟아오른다. 지금 만났으면 안 친했을 지도 모른다는 농담에도 그저 웃기만 하는 그런 사이를 친구라 부르고, 이러한 친구 사이의 정을 우리는 우정(友情)이라 부른다.

친구와 그 삶을 나누는 질긴 우정에 대한 소설이 있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의 이야기')은 달라도 너무 달라 오히려 서로에게 매력을 느낀 조용한 모범생 ‘레누’와 도전적이고 야심찬 행동파 ‘릴라’의 60년에 걸친 삶과 얽혀있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들은 유년기, 사춘기, 장년기, 노년기를 거치면서 평생 우정을 함께한다.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릴라’와 ‘레누’는 절친으로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특별한 사이지만 그 우정에 아름다움만 있지 않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미묘한 감정들은 그녀 둘을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이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라이벌로 살게 한다.

릴라는 명석함을 타고났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한다. 하지만 스스로 필요한 언어들을 독학하는가 하면 커갈수록 여성성과 아름다운 매력으로 남성들의 시선을 독차지 하게 된다. 자신만의 능력과 매력에도 불구하고 늘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레누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사랑, 미움, 질투, 연민의 감정들이 소용돌이 친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순탄할 수 있지만 릴라의 모든 것이 부러운 레누, 햄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전락하는 릴라, 늘 사랑에 목마른 레누, 새로운 도전으로 항상 주목을 받는 릴라, 자신들의 이야기로 성공을 거둔 레누, 딸을 잃어버리고 끔찍한 슬픔을 겪는 릴라 등. 순탄하지만은 않은 인생의 여정을 때로는 함께 때로는 혼자 고독하게 버텨내는 이들의 우정 이야기가 무려 2000쪽에 걸쳐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결국 두 주인공은 각자의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서로의 삶에 대해 동경하고 어떤 때는 서로의 삶을 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둘의 인생과 우정은 더욱 견고해진다.

우리 역시 인생을 살면서 친구를 만나고 사랑하고 서운해 하고 질투하고 이해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 두 여인이 파란만장한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만 갇혀 있지 않은 이유다.
페란테는 “현실을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낀다”며 “소설 속 여성들은 강하고 교육받았으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충격에 쉽게 부서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닐까? 평생을 함께하며 비로소 진정한 우정을 배워가는 소년들의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아프카니스탄 출신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 아미르와 하인 하산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 소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라는 감동적인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우정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과 그것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자책과 후회 그리고 이를 다시 마주보는 용기는 주인공을 성장하게 한다.

호세이니의 또 다른 작품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이러한 굴곡진 세상의 폭력 속에서 연대해 우정을 이어가는 여성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하녀였던 엄마와 살고 있는 ‘마리암’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을 동경했다. 자식에게 조차 외면당한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결국 자살하게 되고, 엄마의 자살 이후 팔리 듯 구두장이에게 시집을 가게 된 ‘마리암’은 강제 결혼이었지만 남편의 그늘 아래에서 버림받은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갔지만 결국 남편의 폭력 앞에 끝도 알 수 없는 구렁텅이 속으로 빠지게 된다.

기구한 그녀의 삶은 내전으로 인한 폭격으로 또 한 번의 시련을 맞게 된다. 폭격으로 파괴된 이웃에서 홀로 살아남은 ‘라일라’가 남편의 두 번째 부인이 되고 그녀가 아이를 출산하면서 ‘마리암’은 그녀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명을 함께 돌보면서 둘은 남편의 폭력에 용기 내어 함께 맞선다. 오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피와 눈물로 얼룩진 현실을 서로 의지하며 피보다 진한 우정으로 삶을 이어간다. 전쟁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나고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자 하는 강인한 여성들의 연대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읽는 내내 그 비참함에 이 소설에 그저 소설 이기를 현실이 아니기를 애써 부정해보지만 작가는 오히려 아프카니스탄에서도 인권을 보호 받아야할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한다. 우정은 그들의 팍팍한 삶 속에서도 그들을 버티고 이겨내고 살아내게 하는 이유가 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친구에 대해 “나의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슬픔 마저 함께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친구. 나를 오롯이 보아주는 그들이 있기에 더 신나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