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만년 3등도, 파운드리 점유율 1%도 "타도! K칩스"

마이크론·인텔 '속도전'

AI반도체 치고나간 마이크론
삼성·SK보다 먼저 HBM3E 양산
"고객사는 엔비디아" 이례적 공개

인텔 "삼성 꺾고 파운드리 2위"
1분기부터 매출 추월 확실시
美기업 일감 나눠주기 카르텔도
반도체 제조강국 韓, 사면초가
‘만년 3위.’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선 D램 시장점유율(작년 4분기 19.1%)이 가장 낮은 미국 마이크론을 이렇게 부른다. 시장점유율뿐 아니라 제품 개발이나 시설 투자 등에서 업계 1위 삼성전자(45.7%)와 2위 SK하이닉스(31.7%)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한 번도 30% 벽을 넘지 못한 D램 점유율이 증거다.

이런 마이크론이 26일(현지시간)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세계 최초로 양산한 것에 대해 “꼴찌의 반란”이란 해석이 나온다. 업계에선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들의 ‘제 식구 챙기기’, 미국 정부의 자국 반도체 기업 지원을 발판 삼아 마이크론이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설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엔비디아에 납품한다”

이날 마이크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HBM3E 출시 보도자료의 제목은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을 가속화하는 업계 최고 HBM3E 양산’이다. 반도체 업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양산(volume production)’이란 단어다. 고객사의 성능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의미여서다. 차세대 HBM인 HBM3E를 양산한 업체는 마이크론뿐이다.

마이크론은 이례적으로 고객사 이름까지 보도자료에 적시했다. HBM 시장의 ‘큰손’으로 글로벌 AI가속기(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특화된 반도체 패키지)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에 납품한다고 발표한 것. “24GB 8단 HBM3E는 올 2분기 출시되는 엔비디아 ‘H200’ AI가속기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썼다.마이크론의 자신감은 보도자료 곳곳에 묻어 있다. “경쟁사를 압도하는 성능” “전력 효율이 경쟁사의 HBM3보다 30% 높다”는 식이다.

최신 D램인 ‘5세대 10나노(㎚)’급을 써 HBM3E를 양산한 점, 8단 적층 제품보다 성능이 좋은 12단 HBM3E 샘플을 다음달 고객사에 보내기로 한 것도 마이크론 기술력이 개선된 증거로 꼽힌다. 27일 SK하이닉스 주가가 4.94%나 빠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 1분기 파운드리 2위는 인텔”

미국 반도체 기업의 역습은 마이크론뿐이 아니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선 ‘중앙처리장치(CPU) 최강자’ 인텔이 “타도 삼성” 슬로건을 내걸었다. 인텔은 지난 21일 미국 새너제이에서 개최한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 2024’에서 “연말까지 1.8㎚ 공정을 시작하고 2027년엔 1.4㎚ 공정에 들어갈 것”이라고 공개했다. TSMC와 삼성전자보다 빨리 최첨단 공정을 시작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인텔은 관련 일감도 150억달러(약 20조원)어치 따냈다고 강조했다.인텔은 외부 고객사를 유치하기 위해 ‘파운드리 세계 2위’ 타이틀부터 갖고 오기로 했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의 실적을 올 1분기부터 별도 공개하면서 자사 제품 생산 실적을 포함하기로 한 것. 이렇게 되면 인텔의 CPU 수탁생산 매출이 파운드리 사업부 실적에 잡힌다. 삼성전자가 내부 물량을 파운드리 실적으로 잡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회계처리를 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 1% 수준인 인텔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10%대 중반으로 올라갈 전망이다. 인텔 관계자는 “당장 1분기부터 삼성 매출을 앞설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생산’에서 강한 역습

‘미국판 반도체 굴기’는 그동안 약점으로 꼽힌 생산 분야에 집중돼 있다. 사실상 반도체 제조 강국인 한국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기업 간 ‘일감 나눠주기’가 본격화하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6조6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첨단 칩 생산을 인텔에 맡기기로 했다. 엔비디아는 인텔에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을 묶는 ‘최첨단 패키징’ 일부 물량을 넘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엔비디아의 최첨단 패키징은 대만 TSMC가 독식하고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