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이탈리아는 닮은꼴…저출산 해결책 머리 맞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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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고 싶냐는 말을 한국어로 뭐라고 하죠?"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사진)가 지난달 23일 서울 한남동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어로 건넨 첫 마디였다. 기자에게 한국말로 커피를 권하고 싶었지만, 정확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질문한 것이었다. 그는 곧장 "한국어를 잘하고 싶어요. 매일 매일 공부하고 있는데, 어려워요"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느리지만 또박또박한 한국말이었다.가토 대사는 한국을 제1순위로 지망해 작년 9월 부임했다. 그는 "외교관이 된 이후 첫 해외 발령지가 태국이었고, 근 20년 만에 두 번째 아시아 국가로 한국에 오게 됐다"며 "동남아와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한국이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지원 배경을 밝혔다. 이어 "올해는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은 (국민들의) 성향이나 지리적으로나 인구 규모 면에서나 이탈리아 와 유사점이 매우 많은 나라"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양국 모두 최근 저출산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양국이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합계 출산율은 1.25명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서 한국과 나란히 최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그는 "저출산 정책은 한 세대가 지나야 정책의 효과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최소 25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며 "정책이 시행되고 나면 그에 걸맞은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토 대사는 그가 신임 외교관이던 시절 한 남성 외교관이 단기 육아휴직을 썼을 때 모두가 '자기 경력을 포기했나'라며 놀라워했던 기억을 언급했다. 이어 "이제는 남성 외교관들도 자연스럽게 육아휴직을 쓰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이탈리아는 2022년 육아휴직 제도를 개정해 아빠의 의무 육아휴직 기간(출산 전후 10일)에 관한 규정을 처음 마련했다. 부모 모두 자녀가 12살이 되기 전에 9개월짜리 유급 육아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선택적 육아휴직 기간도 도입했다. 가토 대사는 "엄마가 양육 주도권을 쥐고 아빠는 따라가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부모가 함께 공평하게 육아에 참여하는 게 저출산 해결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중해를 건너 오는 불법 난민을 수용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서 인구절벽 문제의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출입국·이민관리청(이민청) 신설이 추친되고 있다'고 설명하자 가토 대사는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고, 이민은 멈출 수 없는 현상이 됐다"면서도 "다만 이민자 수용은 도전 과제이자 기회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실을 잘 판단하고 최대한 활용해서 혜택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토 대사는 한국과 이탈리아가 서로에 대한 관심이 '소프트파워'에만 국한되는 게 아쉽다고도 했다. 이탈리아는 드라마, 영화, 가수 등 한국의 K컬처에, 한국은 패션 음식 가구 페라리 등 이탈리아의 이른바 4F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서로를 더 잘 알아야 상호 보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이탈리아는 한국이 세계에서 4번째로 수교를 맺은 나라라는 점부터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지난해 11월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한 후 양국은 협력 강화 분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우주항공 △기초과학 등을 선정한 바 있다. 오는 13일부터 3일간 이탈리아 베로나, 트렌토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산업·기술·디지털 부문 장관 회의에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초청했다. 가토 대사는 "(한국은 G7는 아니지만) 하이테크 강국인 한국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탈리아는 역사상 3번째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우주항공 분야 강국"이라며 "기본적으로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이례적으로 우주항공·방산업체 레오나르도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고 했다. 가토 대사는 "이탈리아는 핵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 헬리콥터 발명가 코라디노 다스카니오, 최초로 상용 마이크로 프로세스를 발명한 페데리코 파진 등 저명한 물리학자를 많이 배출하고 노벨상 수상자도 15명을 넘는다"며 "이런 분야에서 양국이 협력을 다진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대(對)이탈리아 교역량은 유럽에서 독일 다음으로 많다. 가토 대사는 "양국이 향후 교역량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분야는 와인"이라고 했다. 생산량 기준으로 이탈리아는 세계 최대 와인 생산국이지만, 한국 시장에서 이탈리아산 와인의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그는 "이탈리아는 2000여개 포도 품종을 자랑하고 까다로운 품질 관리로 유명한 '지역등급' 와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라면서 "소규모 생산업체들의 마케팅이 충분하지 않아서 한국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는 게 아쉽다"고 했다.가토 대사는 "최근 아일랜드와 프랑스의 소고기에 대해 수입 허가가 났다"며 "이탈리아산 돼지고기, 소고기, 오렌지에 대한 수입 허가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은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함께 지난달 26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한-이 수교 140주년 기념 사진전'을 전시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 솔올미술관의 개관전인 이탈리아 공간주의 미술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 작품전에도 후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사진)가 지난달 23일 서울 한남동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어로 건넨 첫 마디였다. 기자에게 한국말로 커피를 권하고 싶었지만, 정확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질문한 것이었다. 그는 곧장 "한국어를 잘하고 싶어요. 매일 매일 공부하고 있는데, 어려워요"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느리지만 또박또박한 한국말이었다.가토 대사는 한국을 제1순위로 지망해 작년 9월 부임했다. 그는 "외교관이 된 이후 첫 해외 발령지가 태국이었고, 근 20년 만에 두 번째 아시아 국가로 한국에 오게 됐다"며 "동남아와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한국이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지원 배경을 밝혔다. 이어 "올해는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은 (국민들의) 성향이나 지리적으로나 인구 규모 면에서나 이탈리아 와 유사점이 매우 많은 나라"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양국 모두 최근 저출산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양국이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합계 출산율은 1.25명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서 한국과 나란히 최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그는 "저출산 정책은 한 세대가 지나야 정책의 효과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최소 25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며 "정책이 시행되고 나면 그에 걸맞은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토 대사는 그가 신임 외교관이던 시절 한 남성 외교관이 단기 육아휴직을 썼을 때 모두가 '자기 경력을 포기했나'라며 놀라워했던 기억을 언급했다. 이어 "이제는 남성 외교관들도 자연스럽게 육아휴직을 쓰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이탈리아는 2022년 육아휴직 제도를 개정해 아빠의 의무 육아휴직 기간(출산 전후 10일)에 관한 규정을 처음 마련했다. 부모 모두 자녀가 12살이 되기 전에 9개월짜리 유급 육아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선택적 육아휴직 기간도 도입했다. 가토 대사는 "엄마가 양육 주도권을 쥐고 아빠는 따라가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부모가 함께 공평하게 육아에 참여하는 게 저출산 해결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중해를 건너 오는 불법 난민을 수용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서 인구절벽 문제의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출입국·이민관리청(이민청) 신설이 추친되고 있다'고 설명하자 가토 대사는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고, 이민은 멈출 수 없는 현상이 됐다"면서도 "다만 이민자 수용은 도전 과제이자 기회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실을 잘 판단하고 최대한 활용해서 혜택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토 대사는 한국과 이탈리아가 서로에 대한 관심이 '소프트파워'에만 국한되는 게 아쉽다고도 했다. 이탈리아는 드라마, 영화, 가수 등 한국의 K컬처에, 한국은 패션 음식 가구 페라리 등 이탈리아의 이른바 4F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서로를 더 잘 알아야 상호 보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이탈리아는 한국이 세계에서 4번째로 수교를 맺은 나라라는 점부터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지난해 11월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한 후 양국은 협력 강화 분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우주항공 △기초과학 등을 선정한 바 있다. 오는 13일부터 3일간 이탈리아 베로나, 트렌토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산업·기술·디지털 부문 장관 회의에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초청했다. 가토 대사는 "(한국은 G7는 아니지만) 하이테크 강국인 한국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탈리아는 역사상 3번째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우주항공 분야 강국"이라며 "기본적으로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이례적으로 우주항공·방산업체 레오나르도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고 했다. 가토 대사는 "이탈리아는 핵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 헬리콥터 발명가 코라디노 다스카니오, 최초로 상용 마이크로 프로세스를 발명한 페데리코 파진 등 저명한 물리학자를 많이 배출하고 노벨상 수상자도 15명을 넘는다"며 "이런 분야에서 양국이 협력을 다진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대(對)이탈리아 교역량은 유럽에서 독일 다음으로 많다. 가토 대사는 "양국이 향후 교역량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분야는 와인"이라고 했다. 생산량 기준으로 이탈리아는 세계 최대 와인 생산국이지만, 한국 시장에서 이탈리아산 와인의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그는 "이탈리아는 2000여개 포도 품종을 자랑하고 까다로운 품질 관리로 유명한 '지역등급' 와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라면서 "소규모 생산업체들의 마케팅이 충분하지 않아서 한국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는 게 아쉽다"고 했다.가토 대사는 "최근 아일랜드와 프랑스의 소고기에 대해 수입 허가가 났다"며 "이탈리아산 돼지고기, 소고기, 오렌지에 대한 수입 허가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은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함께 지난달 26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한-이 수교 140주년 기념 사진전'을 전시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 솔올미술관의 개관전인 이탈리아 공간주의 미술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 작품전에도 후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