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원도시' 내건 지자체 34곳…지방소멸 극복 위해 맞춤형 공공정원 모델 필요

류광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장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정원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지방정원 조성에 나서고 있다. 지역 공공정원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콘텐츠 개발과 전문가 확보, 주민 참여 등 독창성을 고루 갖춘 지방정원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 각 지자체가 추진 중인 정원산업은 산림청이 2001년 신설한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2015년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로 개정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법률에서는 식물, 토석, 시설물(조형물 포함) 등을 전시·배치하거나 재배·가꾸기 등을 통해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정원을 정의했다. 정부는 정원 인프라 확충과 정원문화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등록된 정원은 국가정원 2개와 지방정원 10개를 비롯해 민간정원 125개, 조성 중인 지방정원도 36개다. 여기에 공공시설에 조성된 생활 밀착형 정원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의 정원은 1500여 개에 이른다. 정원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건 지자체도 34곳에 달한다.그러나 수년 전부터 유행처럼 발표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정원정책은 국민의 수요와 지역 활성화 방안을 얼마나 담고 있을까. 정원 인프라 확충 위주의 사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모든 정원에 같은 지향점을 제시할 수 없지만 국가정원이나 지방정원 등 공공정원은 그 기능과 역할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순천시는 지난해 정원을 통해 지방도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10년 만에 개최된 국제정원박람회는 981만 명의 방문객과 2조841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창출했다. 순천 정원산업 활성화는 단순히 국가정원과 국제정원박람회를 유치했기 때문은 아니다. 순천은 16년 전 국내외 정원과 차별화한 국제박람회를 계획하고, 지역 주민들과 두 번의 박람회를 유치하는 등의 노력으로 정원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전라남도 역시 정원도시 확장을 위해 전남 정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가 하면 관광객 유입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끝에 주변 소도시까지 관광객 증대와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정원을 통해 지방도시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무조건 따라 하기 식의 정원정책과 정원사업 추진이다. 다른 지자체의 성공 사례가 모든 지역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자원을 지금의 산업 트렌드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요소와 적절히 조화시켜 특색 있는 정원을 조성해야 제대로 된 정원도시를 구축할 수 있다.

현재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정원은 국민의 수요와 사회적 기능을 고려할 때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 방안으로 맞춤형 공공정원 모델이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나 지자체가 주관하는 정책이 아니라 민간과의 협치가 필요하고, 지속성이 담보돼야 한다. 특히 공공정원의 경우 민간정원과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산림청과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차별화된 지방정원 조성과 국가정원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지역의 역사성과 특수성, 지역 정원문화 확산, 정원산업 활성화의 구심점 역할을 위해 민간정원과 긴밀히 협력한다. 정부의 정책 실현, 국민 수요를 반영한 혁신사업을 민간과 국가정원 평가에 적극적으로 반영해 공공정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한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체계적인 정원 진흥을 위해 올해 전남 담양에 한국정원문화원을 개원하고, 강원 춘천에는 정원소재실용화센터를 설립하는 등 정원문화 교육부터 정원 소재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원문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최근 정원의 가치와 기능이 사회적으로 재평가되면서 정원산업도 발전하고 있다. 정원문화를 정착시키고, 정원산업 메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지자체들이 질 높은 정원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더불어 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고품질 정원 서비스로 다가서야 한다. 이에 걸맞은 재정적 지원도 뒷받침돼야 비로소 정원도시를 실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