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전문의 "퇴근해도 퇴근하지 않은 느낌…더는 못 버텨"

스트레스 극에 달한 전문의들, 사태 장기화 우려
집단사직한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 가운데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대전의 한 종합병원 전문의가 업무 피로감을 호소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지역 한 종합병원 외과 전문의인 A교수는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는 느낌으로 병원에 남아있는 전문의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마음은 사실상 '더는 못 하겠다'는 심정"이라며 "퇴근해도 응급 상황이나 환자 상태에 대한 연락을 수시로 받으며 퇴근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데 2주째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텨왔다"고 털어놨다.

전공의의 빈자리를 전문의와 남아 있는 의료진들이 채우면서 병원 분위기는 갈수록 혼란한 가운데 불안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A교수는 "수술 관련 동의서뿐 아니라 수혈·시술 등 모든 동의서를 직접 받는가 하면, 소변줄과 비위관 삽입, 동맥 천자(주사기로 동맥혈 뽑아내는 행위) 등 업무를 전문의들이 처리하고 있다"며 "다들 지치고 힘들어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고 의료진들끼리도 언성이 높아지는 등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의 선택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존중한다면서도 사태 장기화는 막아야 한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A교수는 "교수진들도 전공의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병원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면서도 "남아있는 의료진도 점점 체력적·정신적인 여유가 고갈되며 상황이 더 악화해 환자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갈까 심히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가 있기에 우리(의료진)가 있고, 학생이 있기 때문에 교수가 있다는 복잡한 마음으로 버티고 있지만, 진짜 문제는 앞으로다"라며 "전문의 혼자서 할 수 없는 큰 수술은 계속 늦춰지고 지금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인데 우리가 버티는 힘이 얼마나 가겠는가"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정부와 의사 갈등이 강대강 대치로 양보 없이 치닫는 상황에 대한 큰 우려를 나타냈다.

A교수는 "아파트도 하나 짓는 데 3년이 걸리는데, 3천명 규모의 의대 정원을 갑자기 2천명 더 늘리면 부실 교육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1년 만에 갑자기 의대 정원수를 2천명을 늘리는 건 재정적·물리적인 측면에서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로 논의해서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2주간 아무 진전이 없이 혼탁한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며 "이러다 누구 하나 크게 다치거나 잘못될 것만 같은 걱정이 든다"고 토로했다. A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의사로서 유감을 표하며 "전공의 선생님들도 코로나 시기에 정말 많이 고생하며 그 자리를 묵묵히 버텨왔던 사람들인데, 사태가 조속히 해결돼 병원이 다시 정상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까지 5개 대전지역 주요 대학·종합병원 전공의 506명 중 84.2%(426명)가 사직서를 냈다.

이들 5개 병원에는 시내 전체 전공의(527명)의 96%가 근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근무지를 이탈한 349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졌지만, 현재까지 대부분 복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