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건 딸랑 14억 집 하나뿐"…목동 집주인 한숨 쉰 까닭 [돈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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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절 다 지난 재건축 단지들#. 1987년도에 분양 받고 지금까지 살았으니까 꽤 오래 살았네요. 집값은 14억원까지 올랐는데 제가 잘해서 오른 것은 아니잖아요. 세월이 지나니까 자연스레 오른거지. 이제 재건축이 된다고 하는데 가진건 딸랑 이 집 한 채뿐이라 수억원의 추가 분담금을 부담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주민)
"'자금 조달' 사업 성패 가른다"
정부가 재건축정비사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고 있지만 사업에 속도가 붙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돈' 때문입니다. 조합원들이 추가로 내야할 분담금 규모가 커지면서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요즘 재건축 아파트를 두고 시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는 바로 '재건축 단지가 잘 나갔던 시절은 모두 지났다'입니다.
과거엔 재건축은 보유하고 있는 집주인도, 시세 차익을 남기려는 투자자들에게도 유망했습니다. 저층 재건축 아파트 약 10평대를 가지고 있으면 추가로 분담금을 거의 내지 않아도 30평대 아파트로 면적을 키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단지는 일반 분양을 통해 수익을 내 조합원들이 오히려 돈을 버는 곳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나마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여유롭다는 강남지역 재건축마저 시공사 선정 단계부터 공사비를 두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송파구 가락동 '가락삼익맨숀' 조합은 최근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는데 건설사가 단 한 곳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조합은 3.3㎡당 공사비를 810만원으로 제시했는데 사실상 건설사들이 거절을 한 것입니다
기존에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단지들도 공사비가 쑥쑥 오르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해당 단지 조합에 공사비를 기존 2조6363억원에서 4조775억원으로 증액해달라는 공문을 전달했습니다. 3.3㎡당 548만원에서 829만원으로 4년 만에 약 57% 뛴 셈입니다. 송파구 잠실 진주아파트 역시 시공사인 삼성물산, HDC현대산업개발과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작년 4월 3.3㎡당 510만원이던 공사비를 660만원으로 올렸는데, 최근 또다시 889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하면서입니다. 서울에 있는 재건축 단지에 사는 한 주민은 "가진 건 집 한 채뿐인데 돈을 어디서 구해야할 지 막막하다"며 "어찌어찌해서 마련해서 낸다고 해도 추후에 더 부담해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설계가 변경되거나 마감재 등이 바뀌는 일 등이 모두 공사비를 끌어 올리는 요인"이라면서 "지난해 자잿값, 인건비 등이 오르면서 시작된 공사비 상승이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조합원들이 부담해야할 돈이 많아졌다는 것은 사업성이 떨어졌단 얘기고 이는 집값에 영향을 주는 요인입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현대' 전용 160㎡는 지난 1월 52억원 팔렸습니다. 지난해 7월 65억원까지 올랐던 점을 고려하면 13억원이 떨어진 셈입니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 전용 31㎡는 지난 4일 4억6000만원에 손바뀜했습니다. 2021년 12월 8억원까지 거래됐던 면적대인데 3년 만에 반토막이 났습니다.
상계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집값보다 추가 분담금이 더 높아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이 단지에 투자했던 투자자들도 흥미를 잃고 빠져나가는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이제 재건축의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며 "재건축 사업지 중 그나마 희망이 있는 곳은 서울인데, 그마저도 초기 투자금이 많고 추가 분담금 역시 큰 상황이라 유망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