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 견뎌낸 日 브랜드…잘 되는 이유 있었다
입력
수정
지난해 일본 브랜드 반등 기조 '뚜렷'1인 가구인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생활용품과 의류 구입 시 일본 브랜드를 애용한다. 그는 "간결한 디자인의 고품질 제품이 많아 일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선호한다. 국내 가격이 (일본 현지보다) 다소 높은 경우가 있어 의류와 발열 수면안대 등 급하지 않은 상품은 엔화가 저렴할 때 직구로 구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니클로·무인양품 실적 개선
아사히 국내 4위 브랜드로 치고 올라
일본 제품 불매운동 ‘노(No)재팬’이 저물자 일본 브랜드 제품에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 시기를 거치며 경쟁력을 쌓은 브랜드들이 고물가 시기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풀이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의류와 생활용품, 먹거리 등 브랜드 실적이 뚜렷한 반등 기조를 나타냈다.대표적으로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 유니클로의 실적 호전이 눈에 띈다. 유니클로 국내 운영사인 에프알엘코리아는 2022회계연도(2022년 9월~2023년 8월) 매출이 2021회계연도보다 30.9% 증가한 9219억원을 거뒀다. 업계에서는 올해 매출 1조원 회복을 확실시하는 분위기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전년보다 각각 23.1%, 42.8% 증가한 1413억원, 1272억원을 기록했다.
유니클로와 함께 노재팬으로 역풍을 맞았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MUJI) 역시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서 반등에 성공했다. 2022회계연도 매출은 20.9% 뛴 1499억원을 기록했다. 해당 기간 영업이익은 18억원으로 전년(영업손실 43억원) 대비 흑자 전환했다. 순손실은 11억원을 기록했으나 전년(순손실 67억원)보다 규모가 눈에 띄게 축소됐다.일본 맥주는 2019년 7월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을 단행하면서 불거진 노재팬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수입맥주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지난해 일본 맥주 수입액은 전년(2022년)보다 283.3% 뛴 5551만달러를 기록했다. 한 해 만에 수입액이 3.8배 급증하면서 2018년 이후 5년 만에 1위에 올랐다.
특히 일본 맥주 브랜드 아사히는 이른바 ‘왕뚜껑 맥주’로 불린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맥주캔' 흥행과 함께 국내 1위 수입 맥주 브랜드 지위를 되찾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맥주 소매시장에서 아사히는 점유율 5.03%로 해외 브랜드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국산 맥주 브랜드 카스(점유율 38.61%)과 테라(11.85%), 발포주 필라이트(6.1%)에 이어 4위에 올랐다. 롯데아사히주류는 제조사 점유율 기준 3위에 올랐다.소비자들은 역대급 엔저(엔화 약세)에 해외 직접구매(직구)로도 다양한 물품을 사들이고 있다. 몰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해당 해외직구 플랫폼에서 일본 직구 매출은 17%, 건수는 13% 증가했다. 인기 직구 품목은 주류, 전자전기, 패션 등이 꼽혔다. 특히 주류 직구가 눈에 띄게 늘어 사케의 관련 매출은 2022년보다 712% 폭증했다.노재팬의 영향이 희미해지자 추가로 한국 시장에 등판하는 일본 브랜드도 있다. 일본의 이케아'로 불리는 일본 가구업체 니토리는 지난해 11월 이마트 하월곡점에 국내 1호점을 낸 지 3개월 만인 지난달 홈플러스 영등포점에 2호점을 열었다. 니토리는 이같은 대형마트 숍인숍 전략을 통해 연내 국내 매장을 10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고물가와 불황 속 소비자들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입증된 제품에만 지갑을 여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고, 이의 일환으로 일본 브랜드가 주목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브랜드들이 오랜 기간 이어진 내수시장의 ‘저성장·저물가’ 구조에서도 돋보이는 경쟁력을 갖춰 살아남아 해외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이 다양한 분야에서 원천기술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대표적으로 돈키호테(잡화점)와 유니클로(패션) 등이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불황 속에서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상품 소싱력을 무기로 성장한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불황 속에서도 성장하는 노하우를 쌓은 브랜드들이 가격민감도가 높아진 한국 소비자에게 어필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