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데 뭔가 허전한 대한민국? 이젠 예술이 채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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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서진석의 아트 앤 더 시티대한민국은 세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압축성장의 나라이다. 비록 타자에 의해 근대화가 되었지만, 기술적 근대화(산업발전)와 사회적 근대화(민주화) 둘 다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국가이다. 1960년대 일 인당 국민소득이 82달러에서, 2023년 3만3000달러이니 겨우 반세기 만에 약 400배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도 이렇게 급격한 성장과 변화를 겪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대견해하며 자부심을 느낄만하다.
이렇게 한국이 고속 성장을 이루어 낸 근본적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우연히도 필자는 이에 대해 정부 산하 모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자료에서는 약 3가지 요인을 언급하고 있었다. 첫째는 전 국민의 대단한 교육열이었고, 둘째는 전 국민의 엄청난 근면성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정부 주도의 강력한 리더십이었다. 한마디로 우리 선배님들은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 아래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논문 말미에는 경제 성장이라는 성취 이면에 발생한 부정적 사회현상도 언급하고 있었다. 물리적 성장인 기술적 근대화에만 몰두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사회적 근대화와 긴 틈이 발생하며 ‘문화지체’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자본 만능의 위계 사회, 인본의 품격이 상실된 사회는 서로 간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상실된 졸부 국가란 것이다. 동시대의 이기주의, 이념갈등, 계층갈등 등의 부정적 사회 현상들도 이러한 사회적 배경의 연장선일 지도 모른다.문화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힘은 위대하다. 우리는 이미 오랜 역사를 통해서 이러한 ‘소프트 파워’의 순기능을 경험해 왔다. 사회공헌 NGO인 유네스코는 오래 전부터 빈민국에 옥수수, 밀가루 같은 현물지원이 아닌 문화예술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문화예술 교육은 아이들에게 인지과잉에서 벗어나 자기결정성을 발생시키며, 꿈과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한 번의 배불림이 아닌 미래의 건강한 삶을 제시해 주겠다는 정책이다.이제, 예술은 의식주와 같은 우리 생활의 기본적인 공공재다. 이미 해외 선진국에서는 시립미술관에서 구립미술관, 심지어는 동네 미술관들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어린이집, 놀이터, 노인정과 같이 동네 곳곳에 조그만 공립 미술 공간들이 침투하며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다. 80년대 이후 상업주의 미술관 시대, 자본에 종속되며 자율형 미술관이라는 기치 아래 기업화 되어갔던 공공미술관이 이제는 ‘공공·공유미술관’으로 전환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동시대 한국의 문화지체가 야기하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문화예술의 소프트 파워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해와 공감 부족의 갈등 사회를 문화예술로써 한번 보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의 사회적 근대화와 기술적 근대화의 긴 틈을 아름답고 풍요로운 문화예술로 꽉 채워 보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경제 강국에서 문화 강국으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필자는 이것이 아주 불가능한 소망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