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000만원씩 날려도…샤넬이 백화점 매장 문닫는 이유

샤넬, 갤러리아 명품관 매장 문 닫아
'충성 고객' 무기로 백화점에 '갑질'
고객 피해도 양산…"지방 원정고객 헛걸음도"
서울시내 설치된 샤넬 로고의 모습. 사진=뉴스1
"아침부터 오픈런했는데…헛수고 했네요.”
“매장까지 두 시간 넘게 왔는데 문 닫았을 줄은 몰랐어요.”

2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의 샤넬 매장에 들렀던 고객들은 하소연을 쏟아냈다. 샤넬은 지난 28일부터 매장 영업을 중단했다. 이 같은 사실을 몰랐던 소비자들은 매장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는 등 불편을 겪었다. 샤넬은 매장 인근에 위치한 곳에 구찌 팝업스토어 매장을 설치하는 건을 놓고 백화점 측과 갈등을 빚다가 갑자기 매장 문을 닫았다. 백화점 입점 업체가 별도 공지 없이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샤넬 돌연 매장 영업 중단

업계에 따르면 샤넬 갤러리아 명품관 이스트점은 ‘무기한 영업 정지’에 들어갔다. 다만 샤넬코리아는 1층 매장 운영을 중단하면서 제품 교환이나 환불 등 소비자 요구를 처리하기 위해 2층에 별도 공간을 마련했다.

샤넬은 다음달 1~15일 매장 앞쪽의 팝업 전용 공간에서 구찌의 앙코라 팝업이 열리는 것을 놓고 백화점 측에 항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구찌가 제작 중인 팝업 형태나 일부 기물이 샤넬 매장을 가리는 것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다가 아예 영업 중단 조치를 내린 것이다.구찌 팝업이 열리는 장소는 디올 루이비통 막스마라 등 다수 브랜드가 흔히 팝업을 열던 곳. 때문에 백화점은 샤넬의 결정에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팝업 설치를 두고 구찌, 샤넬과 여러 차례 협의를 진행해왔는데 다소 입장차가 있어 조율하던 중 (샤넬이) 영업을 중단했다"며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협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샤넬 측은 "갤러리아가 당사 부티크 앞에 가시성과 운영 환경에 현저한 지장을 주는 팝업스토어 설치를 진행하기로 해 운영 중단을 결정했다"며 "최상의 부티크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운영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최소 구찌 팝업 운영 기간에는 매장 문을 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도 눈치 보는 샤넬

샤넬이 이처럼 초강수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이 브랜드의 매출 비중이 백화점 실적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갤러리아 매출에서 명품 비중은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주요 백화점 3사가 30% 수준인 데 비해 훨씬 높다. 샤넬은 명품 매장에서도 매출 1~2위를 다투는 간판 브랜드다.
서울 시내 샤넬 매장 진열창 모습. /연합뉴스
특히 프리미엄 명품관이 주력인 압구정 갤러리아에서는 샤넬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샤넬에 내준 매장만 네 곳(샤넬 패션 부티크·샤넬 슈즈·샤넬 코스메틱 프리베·샤넬 워치 앤 화인 주얼리 부티크)이다. 수수료도 일반 점포의 절반 수준으로 매겼다. 백화점이 명품에 적용하는 수수료율은 회사·점포별로 다르긴 하나 매출의 15% 안팎으로 알려졌다. 통상 일반 점포는 20%대 후반~30%대다.

명품업계 한 관계자는 “‘갑중의 갑’으로 꼽히는 샤넬이 백화점 길들이기에 들어간 것”이라며 “사실 최근 실적 추세로 보면 명품 매출이 줄면 백화점도 역성장을 하고 샤넬 등 최상위 명품이 빠지면 아예 적자를 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하루에 5000만원씩 손해보는데…

샤넬 압구정 갤러리아점의 하루 매출은 5000만~6000만원선이다. 주말에는 1억원까지 치솟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영업 중단 조치로 하루에 최소 5000만원, 전체 일수로 따지면 수억원은 날리는 셈이다. 샤넬이 이러한 손해를 감수하는 것은 소위 '샤넬 마니아'로 알려진 충성고객층에 대한 자신감으로 풀이된다.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 명품관 샤넬 매장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
샤넬 압구정 갤러리아점이 문을 닫자 고객들은 인근 현대백화점 본점(압구정)이나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으로 향했다. 이날 오후 12시 기준 신세계 강남점 샤넬 매장에서는 대기가 20명 넘게 발생했다. 최근 들어 평일 오후 시간대에는 대기 인원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이 오랜만에 줄을 서가며 매장 입장을 한 셈이다. 명품업계는 샤넬이 압구정 갤러리아점에서 줄어든 매출 일부를 인근 강남 지역 매장들에서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 샤넬 압구정 갤러리아점은 두 층으로 이뤄져 규모가 크고 상품군이 다양한 편이라 지방에서도 원정 쇼핑을 올 정도다. 한 샤넬 리셀업자는 “예물을 사려고 이른 아침부터 광주에서 서울 압구정까지 올라온 고객이 매장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허탕쳤다고 하더라”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카카오톡 단톡방을 통해 샤넬 매장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일부 고객에게 전해주고 있다”고 했다.

샤넬이 백화점을 상대로 벌인 신경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에는 화장품 매장 위치와 면적을 놓고 롯데백화점과 벌인 협상이 깨지자 서울 중구 소공로 본점을 비롯해 잠실점, 부산점 등 롯데백화점 7개 점포에서 매장을 철수하기도 했다. 당시 샤넬은 명품 브랜드라는 점을 내세워 다소 무리한 요구를 했으며 롯데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