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인공지능의 미래 전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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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은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인공지능(AI)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뉴스가 매일같이 쏟아집니다. 최근엔 간단한 명령어만 입력하면 AI가 고화질 동영상을 만들어주는 미국 오픈AI의 ‘AI 소라’가 단연 화제였죠. 세계적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얼굴을 AI로 합성한 딥페이크 음란물도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인류 공동의 현안을 논의하는 지난 1월의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은 AI 기술이나 서비스, 부작용이 아닌 조금은 다른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바로 에너지입니다. AI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 에너지, 특히 전기 수요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증하는데, 여기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머리를 모은 겁니다. 이 행사에서 오픈AI 최고경영자인 샘 올트먼은 “세계의 가장 큰 두 현안은 AI와 에너지”라며 “에너지는 획기적 돌파구가 없으면 AI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출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지금 구글 검색을 모두 생성형 AI로 한다면 필요 전력량이 아일랜드가 한 해 소비하는 전력량과 비슷합니다. AI 딥페이크 같은 뉴스에 사람들이 관련 검색을 훨씬 많이 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정전 사태가 발생할지 모를 일입니다. 에너지와 전기는 ‘문명의 혈관’ ‘현대 경제의 생명선’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죠. 그런데 ‘에너지 먹는 하마’라는 AI의 시대에는 차원이 다른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와 빅테크들이 주목하고 있는 대안 기술, 바람직한 에너지 정책의 방향 등을 4·5면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전기 잡아먹는 하마'
웬만한 나라의 1년 전기 소비량과 맞먹죠

인공지능(AI) 시스템이 대체 전기를 얼마나 소비하기에 이렇게 우려가 클까요? 앞으로 3년 뒤 AI가 전 세계적으로 85~134TWh(테라와트시)에 달하는 전력을 쓸 것이란 분석이 있는데요, 이는 아르헨티나·네덜란드·스웨덴 같은 나라들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과 비슷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AI가 미국 내 전기차 전기 소비량의 5~6배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상상 초월하는 전기 수요 증가

먼저 AI가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죠. 일단 AI를 구동하려면 컴퓨터가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풀어야 합니다. 이를 지원하는 AI 반도체는 전기를 더 많이 소비할 수밖에 없죠. 다음으로 AI는 방대한 데이터량을 바탕으로 학습(훈련)을 합니다. 예를 들어, 자연어처리를 위해 1750억 개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진 GPT-3 모델을 한번 학습시키는 데 1.3GWh(기가와트시) 전력이 소모됩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1분간 소비되는 전력량입니다. 다음으로 검색서비스 제공을 위한 추론 과정도 일반 검색보다 5~10배 더 전기를 필요로 합니다. AI가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을 생각한 뒤, 결론을 공유하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AI의 서버를 돌리는 데이터센터(IDC)도 ‘전기 먹는 하마’의 결정적 요소입니다. 데이터센터는 원래 수천개 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와 프로세서 등이 데이터를 처리·저장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열이 발생합니다. 생성형 AI는 서버를 훨씬 많이 쓰기 때문에 열도 더 오르게 되죠. 이를 빠르게 식히기 위해 냉각 팬을 쉴 새 없이 돌려야 하고, 그래서 전기 소비가 많은 겁니다.

AI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지구촌 전기 수요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2050년까지 에너지소비가 지금보다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세계 인구가 80억 명에서 100억 명으로 늘어나고, 1인당 평균 에너지 소비도 연간 2만1000KWh(킬로와트시)에서 2만5000KWh로 적어도 20%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죠. 여기에 교통과 수송 부문의 전기화 추세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은 석유·석탄·천연가스 등 1차 에너지의 60%가량이 교통과 난방, 산업용으로 쓰이는데, 이게 점점 전기 수요로 대체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AI 수요까지 모두 아우르면 2050년 전기 수요가 지금의 1000배로 증가할 것이란 극단적 예측도 나옵니다.현 기술로는 마땅한 대안 없어

그렇다면 지금의 에너지 기술과 시장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올려볼 수 있는 원자력은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인식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원전 투자 확대 방침을 밝혔지요. 그러나 미국과 영국조차도 기술·건설 문제, 숙련 인력 부족 등으로 원자력발전 용량 확대가 쉽지 않습니다. 세계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0~2020년 착수된 신규 원전 프로젝트가 평균 3년 이상 늦어지고 있어요. 원전의 연료인 우라늄도 세계 전체 상업 농축 용량의 절반 가까이를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어 언제든 공급망에 차질을 빚을 수 있습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넷제로(탄소중립)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탄소 배출 감축에 전 세계적으로 수조 달러를 투입하고도 화석연료가 주 에너지원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에너지원 가운데 화석연료의 비율은 1970년대 이후 거의 80% 수준으로 일정합니다. 왜냐고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자연이 제공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가변성·간헐성이란 한계가 있는 데다 저장능력을 키워 이 문제를 극복하려 해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변전과 송전으로 인한 에너지 손실도 큽니다. 재생에너지는 설비 용량을 두 배로 늘려도 전기 공급은 3분의 1밖에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는 전체 에너지원의 3%(원자력은 4%), 총전력 생산의 10% 정도만 기여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넷제로를 추진하고 있으니 AI 시대 에너지를 어디서 끌어와야 하는지 답이 잘 나오지 않는 겁니다.

NIE 포인트

1. 요즘 생성형 AI를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 친구들과 얘기해보자.

2. AI가 전기 공급 증가 외에 인류에게 어떤 도전적 과제를 던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3. AI 때문에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게 어렵다면 AI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 건 아닌지 토론해보자.
대전시 유성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인 ‘인공태양(KSTAR)’을 점검하고 있다. 한경DB

'에너지 장악하는 자, 세상을 지배한다'
빅테크도 핵융합·SMR 개발 경쟁 합류

AI 시대의 에너지 문제를 풀 실마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현재로서는 핵융합 발전과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같은 차세대 원자로, 태양열·지열 등을 이용하는 새로운 에너지기술 개발에 기대를 걸어야 합니다.

올트먼, 핵융합에 5000억 원 투자

이미 AI 업계의 스타인 샘 올트먼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는 핵융합,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SMR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들은 전기와 관련한 가장 첨예한 이해당사자이기도 하지만, 전기를 장악하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올트먼은 핵융합 기술 스타트업 헬리온에너지에 2021년 개인적으로 3억7000만 달러(약 4900억 원)를 투자했어요. 이 업체는 작년에 MS의 데이터센터 전기를 공급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뒤집어보면 MS도 핵융합 에너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올트먼을 포함해 핵융합 기술 개발에 투자된 돈만 62억 달러(8조2800억 원)가 넘습니다. AI의 출현이 핵융합 기술의 연구개발을 앞당기고 있는 겁니다.

안전·무한한 ‘꿈의 에너지’ 핵융합

핵분열은 크고 무거운 우라늄 원자핵이 외부의 강한 힘(빠르게 움직이는 중성자의 충돌)으로 쪼개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기존 원자력발전은 핵분열 반응으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물을 증기로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죠.

‘제2의 불’이 전기, ‘제3의 불’이 기존 원자력이라면 ‘제4의 불’은 바로 핵융합입니다. 이는 수소 등의 가벼운 원자핵끼리 합쳐지는 반응인데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들은 핵융합을 통해 에너지를 만듭니다. 하지만 섭씨 1억℃ 이상의 초고온, 대기압의 30억 배가 넘는 초고압에서 전자와 원자핵이 분리돼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아닌 플라스마 상태로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구현이 쉽지 않습니다. 고온의 플라스마 상태에서는 원자핵과 전자가 서로 반발하게 됩니다. 핵융합을 위해서는 이 반발력을 거슬러 입자끼리 초고속으로 정면충돌하게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됩니다.

핵분열과 핵융합이 만드는 에너지 차이는 원자폭탄(핵분열)보다 수소폭탄(핵융합)이 100배 이상 강한 데서 알 수 있어요. 핵융합은 방사성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원료인 중수소는 바다에 무한하게 존재합니다. 그래서 ‘꿈의 에너지’라 불리죠. 세계 각국의 개발 경쟁도 치열합니다. 영국은 세계 최초의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위해 2040년까지 핵융합발전소 건설을 마치겠다는 목표입니다. 미국은 2040년까지 핵융합발전소 건설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어요.

SMR는 기존 원전기술을 크게 개선한 소형 원자로입니다. 일체형의 단순한 설계를 통해 방사능 유출 위험을 대폭 줄였습니다. 원자로 내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영역인 노심이 손상될 확률이 10억 년에 1회로, 대형 원전(10만 년에 1회)에 비해 월등하게 안전합니다. 방사선 비상계획 구역도 대형 원전은 반경 16km인 반면, SMR는 300m에 불과할 정도로 안전성이 뛰어납니다.

전문가 “에너지원의 조합에 답 있다”

에너지정책은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 공급가격의 적절성(저렴함), 환경보호 등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탄소 배출량 저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는 인류의 에너지 소비가 2019년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세운 것인데요, AI 시대를 맞아 이런 가정은 위험천만하기까지 합니다. 에너지에 대한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접근법은 결코 정치적이어선 안됩니다. 최선의 정책은 재생에너지를 포함해 특별히 어느 하나의 기술에만 치우치지 않고 모든 에너지 시스템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핵융합과 태양열, 조수, 지열 또는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조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NIE 포인트

1. 인류의 에너지 개발 역사를 한번 훑어보자.

2. 핵융합 기술 개발이 어느 정도 단계에 와 있는지 확인해보자.3. 에너지 기술에서 환경보호라는 가치와 경제적 활용가능성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