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연의 세대공감] '에이지즘'을 지우면 새로운 시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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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동안이시네요’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인가 외모에 대한 굉장한 칭찬이 됐다. 그만큼 사람들은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것, 아니 제 나이처럼 보이는 것 자체를 거부하게 됐다. 그 기저에는 ‘젊음이 우월한 것’이라는 가치관이 깔려 있다.
비단 한국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인종에 따른 차별, 즉 레이시즘(racism)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러 선진국에서 나이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 것 같다. 주로 노인층에 대한 차별적 혹은 혐오적 시선인 에이지즘(ageism)이 바로 그것이다.미국 작가 브래들리 셔먼이 쓴 <슈퍼에이지 이펙트>라는 책을 보면 미국에도 에이지즘 문제가 만연한 모습이다. 노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고 ‘사회적으로 도움을 줘야만 하는 집단’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는 엄청난 시장이 가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인류의 100세 시대’라는 뉴노멀을 설명하는 또 다른 책, 수전 월너 골든의 <진짜 돈 되는 시장>의 주장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이 책은 특히 원제(Not Age, Stage)에 큰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선진국 사람은 대부분 어린 시절 비슷한 경험을 겪고, 상당수가 중산층에 속한 채 평생 비교적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다가 60세 이전에 은퇴해 짧게는 5년, 길게는 10여 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수십 년 전까지는 이게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하지만 더는 통용되는 인생 공식이 아니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은퇴도 늦어졌고, 은퇴했다고 하더라도 살아갈 날이 최소 20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된다. 소위 ‘평균적인 삶’은 사라진 지 오래다.대신 여생이 길어진 만큼 제2, 제3의 인생을 살게 됐다. 나이가 많아도 각자 굉장히 다른 삶의 여정을 밟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비슷한 연령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없다. 각자의 나이(age)보다 어떤 인생의 단계(stage)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다시 세분화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연령으로 묶지 않고 이를 쪼개 인생의 단계로 묶어볼 때 새로운 시장이 보인다. 60세라도 80세 넘은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부모 부양’이라는 인생 단계에 계속 존재한다. 반면 부모가 이미 다 돌아가신 상태에서 연금과 자신의 자산을 토대로 제2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문화와 예술, 여행 등의 경험재가 잘 팔릴 것이다.
여전히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 일을 더 하는 사람들은 ‘직업인’ ‘생활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하고 그에 따른 소비와 구매가 이뤄질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은퇴하는 세대는 예전 그 어떤 세대에 비해서도 큰 부를 축적한 경우가 많다. 라는 책의 한국어 번역 제목이 ‘진짜 돈 되는 시장’인 이유다.물론 양극화로 빈곤에 처한 노인도 많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관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안전망과 복지라는 정책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다.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새로운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기획하는 사람들은 ‘MZ’니 ‘잘파’니 하는 젊은 세대 중심 논의에만 머물 것이 아니다. ‘실버세대’로 뭉뚱그려진 노년층의 필요(needs)가 아니라 그들의 인생 단계와 다양하고 세분된 ‘욕망’을 이해하고 시장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에이지즘에 대한 성찰은 ‘인권’이나 ‘차별의 해소’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키워드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20여 년 전의 광고 문구는 이제 광고 문구가 아니라 시장의 뉴노멀이 되고 있다. 안티에이징(Anti-aging)이 그동안 여러 산업, 특히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소비재 영역에서 큰 화두였다면 100세 시대의 새로운 화두는 안티에이지즘(Anti-ageism)일지도 모른다.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우리가 싸우는 이유: MZ세대는 없다> 저자
비단 한국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인종에 따른 차별, 즉 레이시즘(racism)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러 선진국에서 나이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 것 같다. 주로 노인층에 대한 차별적 혹은 혐오적 시선인 에이지즘(ageism)이 바로 그것이다.미국 작가 브래들리 셔먼이 쓴 <슈퍼에이지 이펙트>라는 책을 보면 미국에도 에이지즘 문제가 만연한 모습이다. 노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고 ‘사회적으로 도움을 줘야만 하는 집단’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는 엄청난 시장이 가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인류의 100세 시대’라는 뉴노멀을 설명하는 또 다른 책, 수전 월너 골든의 <진짜 돈 되는 시장>의 주장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이 책은 특히 원제(Not Age, Stage)에 큰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선진국 사람은 대부분 어린 시절 비슷한 경험을 겪고, 상당수가 중산층에 속한 채 평생 비교적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다가 60세 이전에 은퇴해 짧게는 5년, 길게는 10여 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수십 년 전까지는 이게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하지만 더는 통용되는 인생 공식이 아니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은퇴도 늦어졌고, 은퇴했다고 하더라도 살아갈 날이 최소 20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된다. 소위 ‘평균적인 삶’은 사라진 지 오래다.대신 여생이 길어진 만큼 제2, 제3의 인생을 살게 됐다. 나이가 많아도 각자 굉장히 다른 삶의 여정을 밟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비슷한 연령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없다. 각자의 나이(age)보다 어떤 인생의 단계(stage)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다시 세분화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연령으로 묶지 않고 이를 쪼개 인생의 단계로 묶어볼 때 새로운 시장이 보인다. 60세라도 80세 넘은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부모 부양’이라는 인생 단계에 계속 존재한다. 반면 부모가 이미 다 돌아가신 상태에서 연금과 자신의 자산을 토대로 제2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문화와 예술, 여행 등의 경험재가 잘 팔릴 것이다.
여전히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 일을 더 하는 사람들은 ‘직업인’ ‘생활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하고 그에 따른 소비와 구매가 이뤄질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은퇴하는 세대는 예전 그 어떤 세대에 비해서도 큰 부를 축적한 경우가 많다. 라는 책의 한국어 번역 제목이 ‘진짜 돈 되는 시장’인 이유다.물론 양극화로 빈곤에 처한 노인도 많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관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안전망과 복지라는 정책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다.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새로운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기획하는 사람들은 ‘MZ’니 ‘잘파’니 하는 젊은 세대 중심 논의에만 머물 것이 아니다. ‘실버세대’로 뭉뚱그려진 노년층의 필요(needs)가 아니라 그들의 인생 단계와 다양하고 세분된 ‘욕망’을 이해하고 시장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에이지즘에 대한 성찰은 ‘인권’이나 ‘차별의 해소’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키워드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20여 년 전의 광고 문구는 이제 광고 문구가 아니라 시장의 뉴노멀이 되고 있다. 안티에이징(Anti-aging)이 그동안 여러 산업, 특히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소비재 영역에서 큰 화두였다면 100세 시대의 새로운 화두는 안티에이지즘(Anti-ageism)일지도 모른다.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우리가 싸우는 이유: MZ세대는 없다> 저자